“건강 허락한다면 대학 졸업장 따고 싶다”
“건강 허락한다면 대학 졸업장 따고 싶다”
  • 이미정
  • 승인 2007.03.02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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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손덕순 75세 할머니 60년 만에 중학교 졸업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꼭 대학에 가서 의류 및 요리 관련 학과 공부를 하고 싶어요.”


지난 7일 전북도립 여성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60여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손에 쥔 손덕순(75·사진)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배어났다.


그는 이날 졸업생 90명 가운데 최고령자로, 재학 3년여간의 모범적인 교내 활동 등을 인정받아 학교장으로부터 ‘선행상’을 받기도 했다. 손 할머니의 이전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전부였다.

 

1945년 진안 부귀국민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8·15 해방과 함께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생활에다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 환경 탓에 더는 학업에 정진할 수 없었다.


이후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한 평생을 보냈지만 좀처럼 그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손 할머니가 향학열을 불태우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 남편을 일찍 여의고 6남1녀의 자식을 키우던 그는 1990년대 후반 몰아닥친 IMF로 가정생활이 어려워지자 돈을 벌 요량으로 손자와 함께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한국에서 가져간 돈으로 현지에서 2~3평 규모의 옷가게를 차려 한때 장사도 잘 했지만 현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언어소통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2년 만에 귀국했다.


“손자나 아르바이트 직원이 없을 때 물건을 사러온 현지인과 말이 통하지 않아 빚은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고 밝힌 그는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고 말했다.


전주로 되돌아온 그는 2001년 전주시내 한 주부교실에 입학, 각고의 노력 끝에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했으며, 2004년 3년 과정의 도립 여성중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손 할머니는 가장 힘들었던 과목을 영어와 수학이라고 답하며 “내 머리는 지우개에요. 배우면 곧바로 지워지거든요”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30여명이나 되는 손자들에게 ‘할머니 혼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보여준 것이 가장 보람이 있다”면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공부를 해 대학 졸업장까지 따고 싶다”고 말했다.


 서장경 전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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