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로인들에게 유산은 아직도 남아있다
기고-경로인들에게 유산은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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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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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설 파주 명예기자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경로인들이 겪는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조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경로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 1962년 유엔에 등록된 나라는 102여개 국으로 당시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102달러였고, 태국의 국민소득은 220달러였다. 이때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75달러에 불과해 순위로 따지면 뒤에서 2위로 우리나라 뒤에는 달랑 인도만이 존재했다.

 

세계 120여개 나라 중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그러나 1964년 2년여 만에 국민소득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점차 경제발전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경제가 날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그 당시 젊은이었던 우리 경로인들의 끈질긴 인내와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어려웠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민 모두는 허리띠를 졸라 매야했다. 남성들은 밖에서 밤낮없이 일을 했고, 마땅한 돈 벌이가 없었던 여인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생활고를 달랬다. 그녀들이 자른 머리카락은 서울로 유학간 아들의 학비를 위해 쓰여졌고, 자식들이 먹을 따뜻한 밥 한끼를 위해 쓰여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머리카락을가발로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외국에 수출한 것은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값싼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 저렴한 섬유를 사용해 만든 곰인형 등 값싼 원료를 이용해 갖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팔았다. 게다가 전국 쥐잡기 운동을 벌여 잡은 쥐의 털로 일명 코리아 밍크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1965년 1억달러에 달성하게 됐고, 우리나라를 작고 못사는 나라로 인식했던 세계는 놀랐다. 이때 우리나라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경제발전을 위한 노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고, 군인들이 월남전에 참가해 얻은 수당으로 경부 고속도로가 건설했다.

 

어린 나이에 서독에 가서 이방인들의 시신을 닦고, 수천미터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피를 흘렸던 경로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있었기에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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