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작당’서 눈길 끈 ‘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
‘시청 작당’서 눈길 끈 ‘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11.07 19:41
  • 호수 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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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극에서 마술쇼‧레크리에이션까지 “우리는 만능극단”
▲ ‘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의 단원 구자분(왼쪽부터), 홍경자, 김세순, 김윤순, 정영순씨가 직접 제작한 동물 모양의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준우 기자

10월 2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시청 작당’행사에서 시민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은 이들이 있다. 젖소, 돼지, 문어 등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모양의 탈과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어르신들이다. 의상만큼 밝고 활기찬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비록 서울시가 선발, 지원하기로 한 10개 팀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동극을 할 뿐만 아니라, 멋진 소품까지 손수 제작한다는 말을 스치듯 들은 후에는 더욱 그랬다. 단장 김윤순(65)씨를 비롯해 구자분(68), 김세순(68), 홍경자(65) 단원을 만나 극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들었다. 네 사람이 뿜어대는 극단에 대한 열정과 애정의 온도가 어찌나 뜨겁던지, 쌀쌀한 날씨도 실감키 어려웠다.


동극 연출‧연기부터 소품 제작까지 단원들끼리 척척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인정… 60~70대 15명 200여회 공연
대학생 자원봉사자 아쉬워…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 희망

 

▲ 10월 25일 열린 ‘시청 작당’에 참가한 단원들.

-‘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을 소개해 달라.
김윤순=저희는 주로 소외계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치원‧병원 등에서 동극 공연을 통해 봉사하고 있는 실버극단입니다. 창단된 2007년 관악구 평생학습관 산하 동화구연 동아리로 시작했지만, 2009년부터는 지금의 극단 형태를 갖추고 총 15명이 활동 중입니다. 지금까지 총 200회 정도 공연했어요. 구성원 대부분은 60대 중반부터 후반이며, 70대도 있습니다. 2010년부터는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승인돼 단원마다 월 20만원씩 받고 있고요. 사실 극단이지만 극 공연만 하는 것은 아니고, 레크리에이션, 마술쇼,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연출, 각색, 소품 제작 등 동극을 만드는 전 과정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많은 것을 소화하고 있는 만큼, 극단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을 텐데.
김윤순=일주일에 한 번은 연습, 한 번은 공연을 합니다. 보통 연습을 하면, 4시간 정도 하는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동극으로 만들 동화를 고르고, 직접 각색합니다. 여기에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부터 음식까지 다양한 모양의 의상과 소품도 만들어요. 의상과 소품에 대한 단원들의 아이디어가 모아지면, 함께 시장에 가서 원단이나 필요한 재료를 삽니다. 흥정도 하고요. 그렇게 구입해온 재료로 만드는 거죠.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연출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또, 동극에 나오는 대사와 음악 등을 모두 녹음하는 과정도 거칩니다. 단원들이 연령이 있어 모든 분량을 외우는데 한계가 있는데다 공연하는 장소가 넓을 경우 큰 소리로 대사를 읊기가 어려워 아예 사전 녹음해 놓는 거죠. 이렇게 극을 녹음한 CD를 들고 다니면서 립싱크 공연을 하는 거예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죠. 단원들 모두 이 일을 정말 즐기며,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기에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입니다.

-특히 단원들의 열정이 실감날 때는 언제인지.
구자분=극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를 보일 때요. 저희는 꾸준히 선생님을 섭외해 극에 대해 강의를 듣고 공부합니다. 그래서 아마추어 극단이긴 하지만, 설렁설렁 하는 사람은 버틸 수가 없어요. 또, 어떤 역을 맡아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고요. 동료들을 보면 긍지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동극을 공연한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내용인가.
김윤순=아무래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편식의 부작용에 대해 우화로 보여준다든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환경이 어떻게 오염되는지 등이요. 그냥 말하면 재미없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 녹여내니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보람된 순간도 많겠다.
구자분=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볼 때 보람차요. 아이들은 우리 극단이 조금만 늦어도 기다리고 “왜 할머니들이 오지 않느냐”고 난리가 난대요. 50명부터 많게는 200여명까지 많은 아이들이 저희를 간절히 기다려준다는 게 무척 기분 좋죠. 지난 번 구청 축제 때는 작은 며느리가 공연을 보러 왔는데, 끝나고 ‘어머니, 정말 수준 높은 공연 하시더라’며 ‘대단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이렇게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하고, 새삼 극단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홍경자=사실 저희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것보다 극단 활동을 하면서 얻는 행복이 훨씬 더 큰 거 같아요. 연습이나 공연하기 위해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물론 힘들기 때문에 입으로는 불평불만도 하지만, 끈끈한 정이 있어요. 먹을 것 하나라도 가져와 나눠 먹고, 소품 만든다고 몰려다니죠. 이렇게 움직이면서 적은 금액이지만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느껴요. 또, 세 살짜리 손주가 집에 올 때마다 놀아줄 수 있는 것이 많아 좋습니다. 아이에게 마술도 보여주고, 페이스페인팅도 해줍니다. 함께 율동을 하기도 하고요. 극단 활동을 하며 이런 것들을 배우지 않았으면, 아이와 뭘 하고 놀아줬을까 싶어요.

-어르신들에게도 봉사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세순=병원 등을 찾아 공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로당, 복지관에서 종종 ‘색종이 접기 교실’을 열어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선생님께 배운 걸 저희만 알고 있기 아깝잖아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있고요. 색종이 접기처럼 손을 쓰는 활동은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하니 일석이조죠. 게다가 11월 15일에는 저희가 지도한 어르신들이 관악구청에서 색종이 접기 작품 전시회까지 열게 됐어요. 큰 도화지에 어르신들이 접은 색종이를 붙인 작품들이 공개 돼요. 요즘 마무리 과정이 한참입니다.

-힘든 점은.
김윤순=우선 재정적으로 너무 열악하죠. 단원마다 월 20만원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상 교통비‧식비, 그리고 소품재료비로 다 쓰게 되고, 심지어 사비를 충당해 쓰고 있는 실정이에요. 저희가 관악구 내에서 활동하다보니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거든요. 여기에 강의료까지 지불해가며 종종 강사를 초대하니까 비용이 많이 드는 거죠. 사단법인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정말 적은 돈이라도 후원해줄 수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요. 교통비나 소품 재료만이라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나마 관악구 평생학습관이 연습 장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서 힘이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극단의 공연을 여러 사람과 공유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홍경자=서울시가 올해 10월 25일 개최한 ‘시청 작당’에 참가해 우리 공연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올려 줄 청년을 찾았었어요.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서울시가 지원해주는 팀에 선발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산된 상태에요. 청년들에게 저희가 금전적으로 대가를 지불할 상황이 아니니까요. 많이 아쉬워요. 그렇지만, 저희 극단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공연을 공유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앞서 설명했듯 저희는 3개월마다 새로운 작품을 하는데, 관악구 내에서만 공연하고 묻어두는 것이 너무 아쉽거든요.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이라도 영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올려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끝으로 노년 세대에게 한 마디.
홍경자=이 시대의 모든 노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삶이 달라진다고요. 또, 노인 관련 기관 및 단체에 바라는 것도 있어요. 비록 나이는 노인일지라도 어르신들이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죽이는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요. 모든 어르신이 무엇이 됐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도전하면서 활력 있는 노년기를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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