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의 샌드라 블럭과 이소연의 256억짜리 우주쇼
‘그래비티’의 샌드라 블럭과 이소연의 256억짜리 우주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1.08 10:57
  • 호수 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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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취재수첩

국력 과시의 예는 많다. 올림픽 메달 수부터 군 병력 시가행진, 핵무기 보유 등등.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우주과학 능력도 국력 위세의 하나다. 항공우주산업은 그 나라 과학 발달의 현주소이다. 미국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처음엔 소련에 뒤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 경쟁력을 우주과학에 올인 해 달에 먼저 인간을 보내면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중국도 뒤늦게 우주 개발 경쟁에 합류해 2011년 우주정거장 발사에 성공했고, 우주정거장 텐궁1호를 우주에 띄워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불모지나 다름없다. 자체적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지 못한다. 로켓의 핵심인 1단 엔진을 러시아에서 2300억원을 주고 사가지고 와 그들의 기술로 나로호를 쏘아 올렸을 뿐이다. 그래서 2차 발사 실패 후까지도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원인 규명조차 하지 못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우리나라 항공우주과학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야심찬 사업을 펼쳤다. 우주인 배출 및 우주 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지난 2005 ~2008년 256억2200만원을 투입했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단연 이소연이다. 3만6200명의 후보 가운데 뽑힌 이소연은 1년간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2008년 4월 8일부터 19일까지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소연은 항우연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조건에 따라 4년 동안 전국을 돌며 235번의 강연을 했다. 그는 계약 기간보다 2년을 더 근무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올 8월 한국계 미국인 안과의사와 결혼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소연이 우주과학과는 거리가 먼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밟으면서 사달이 났다. 이소연은 거액의 국민 혈세가 들어간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을 대표해 우주를 경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가 예뻐서 우주여행을 보내준 것이 아니다. 그것을 계기로 항공우주 분야에 남아 연구를 계속해 우리나라 우주과학 발전에 기여하라고 황금 같은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동시에 국민혈세를 낭비한 꼴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이 문제를 추궁하자 항공우주연구원은 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평가보고서는 “사회적 효과로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우주과학 문화 확산에 긍정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청소년의 이공계 선호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과학 문화 활동과 과학 교육 활동 자료의 경제적 가치를 합쳐 모두 513억7500만원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우주에 대한 관심과 청소년들의 직업선택에 끼친 영향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우주과학 발전의 단절이다. 이소연이 우주과학 분야에 계속 발을 들여놓는다면 위에 언급한 효과는 지속적일 수 있겠지만 그가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서 애초의 목적은 흐지부지 됐다. 항우연은 이것이 심각한 문제인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주에 본 영화 ‘그래비티’(Gravity·중력)는 이소연보다 우주에 대한 관심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국 의사 출신 우주인 샌드라 블럭이 허블망원경을 고치던 중 미국 우주선 익스플로러가 우주 파편에 맞아 기능을 상실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블럭은 러시아와 중국의 우주정거장을 거쳐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끝에 결국 중국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다는 내용이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하면 살 수 있다는 극적인 플롯에 의해 관람객은 무의식적으로 이들 나라의 우주과학 능력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을 가질 수도 있다. 우주 공간에 펄럭이는 미국 성조기 무늬의 낙하산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중국말이 이소연의 256억원짜리 ‘1인 우주 쇼’와 오버랩 되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동안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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