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종신직원’ 76세 장재동씨
남이섬 ‘종신직원’ 76세 장재동씨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2.05 18:09
  • 호수 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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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안 잘리고, 80세 넘으면 일하지 않아도 월급 나와요”

38년째 직원식당 주방 일… 하루 200명 식사 담당
공기 맑고, 풍광 좋은 섬에서 일하는 건 축복

 

▲ 30대 후반부터 남이섬에서 일해 온 장재동씨. ‘김치 담그는 일이 가장 힘들다’며 웃었다.

‘환상의 섬’으로 불리는 남이섬(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은 ‘신의 직장’이기도 하다. 해고의 걱정 없이 평생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섬을 경영하는 ‘나미나라공화국’(대표 강우현)은 60세 이상 직원 중에서 성실한 근무 태도로 회사에 세운 공이 크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종신직원으로 선정한다. 종신직원은 본인 사망 외에는 회사에서 내쫓기지 않는다. 80세 이상 되면 일하지 않아도 매달 8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40~ 50대에 잘리고, 60대 계약직은 엄두도 못내는 우리나라 취업현실에 비추어 꿈같은 직장이다. 남이섬의 전체 직원 200여명 가운데 종신직원은 장재동(76)씨 등 6명이다.
“6년 전 종신직원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시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게 시어머니 때문이었거든요.”
1975년 어느 날, 남이섬에서 일하던 시어머니가 병이나 드러눕자 장씨가 대신 나와 일을 하게 됐다. 현재 장씨는 남이섬 직원식당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직원들의 하루 세끼 식사를 담당하고 있다. 장씨의 집은 남이섬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가평이다. 매일 오전 8시 집을 나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저녁 6시 퇴근해 다시 배를 타고나와 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똑같은 일과를 38년째 해오고 있다.
“30대에 처음 섬에 들어갔을 때는 지금처럼 나무가 많지 않았어요. ‘계절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해 잔디도 심고 둑 쌓는 일도 하고 그랬어요.”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일하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질 때도 있었다. 멀리서 리어카가 한 대 천천히 다가오더니 장씨 등에게 얼음물을 나누어주었다. 장씨는 “그때 먹었던 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었다”며 웃었다.

▲ 남이섬 메타세콰이어 길에 있는 6m 높이의 거대한 모자상. 중국인 위칭청의 작품으로 제목은 ‘장강과 황하’이다. 어미의 두 젖이 중국 대륙의 두 젖줄 장강과 황하를 상징한다.

남이섬은 1965년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가 모래땅을 일궈 메타세콰이어 등을 심고 가꾸면서 관광객들이 하나, 둘 찾기 시작했다. 맑고 푸른 강물, 깨끗한 공기와 우거진 수목,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해마다 일본·중국 관광객 등 150만명이 찾는다. 그러나 30년 전만 해도 남이섬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온갖 쓰레기가 넘쳐났고, 진흙땅은 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남이섬의 기적을 일으킨 이는 강우현 대표. 홍대 출신의 동화작가이자 디자이너인 강 대표는 2001년 매출 20억원, 빚 60억원인 황량한 섬을 3년 만에 동화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흑자 섬으로 바꾸어 놓았다. 강 대표는 “가장 힘든 건 길을 살리는 일이었다. 수백 트럭 분량의 마사토를 깔고 땅을 다졌다. 먼지 풀풀 날리던 길이 아늑한 숲속 오솔길이 되었다”고 기억했다.
장재동씨 등 종신직원들은 남이섬 성공 역사를 함께 썼다. 나미나라공화국에서 가장 연장자인 김동제(80)씨는 1975년 입사해 조경팀 수재원에 근무 중이다. 민병도 전 총재와 함께 나무를 심은 김씨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땅이라 묘목 100그루를 심으면 절반이 말라서 죽었다. 자식 돌보는 마음으로 어린 나무를 지켜냈다”고 회고했다.
종신직원 신현분(69)씨는 나미나라공화국 호텔 ‘정관루’ 연회팀에서 일한다. 신씨는 처음엔 남편과 함께 남이섬 제방 쌓는 일을 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아이들이 세 살, 다섯 살 때 일이다. 아이들은 저녁때가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선착장까지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 아이가 강가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어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겨우 건져내 아이를 등에 업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던 일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1998년 입사해 2007년 종신직원이 된 석성계(79세)씨는 공예원 ‘남이요’ 요장이다. 65세에 남이섬에 들어와 뱃줄 묶는 일이나 쓰레기 치우는 일을 담당했다. 2001년 남이섬 옹기제작을 맡으면서 제2의 인생을 맞이했다. 석씨 덕에 전통 흙가마 ‘남이요’가 탄생했고, 그의 발 물레시연은 남이섬의 귀중한 관광상품이 되었다. 중국에서 열린 국제창의문화엑스포 등 여러 국내외 행사에서 발 물레 시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종신직원 조구형(76)씨는 남이섬 ‘룽칭샤호’ 선장이다. 1978년 입사해 30여년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들을 배로 실어 날랐다. 강물이 줄어 배를 띄우지 못할 때는 아침마다 간이다리를 놓았던 고생스런 기억이 남아있다. 물이 차오르면 다리가 떠내려갔고 이튿날 아침 다시 다리를 놓아야 했다. 손님을 업어서 강을 건너다 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들 종신직원들은 회사의 파격적인 대우에 행복해하고 고마워한다.
장재동씨는 “여든이 되면 일을 안 해도 회사에서 월급을 준다고 하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못하는 요즘 일도 계속하고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돈도 나온다니까요. 그렇지만 내 몸이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고 말했다. 

▲ 남이섬은 한 해 1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사진 왼쪽). 40만㎡의 남이섬은 푸른 강과 맑은 공기, 아름드리 수목과 조형물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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