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인체조직 기증… 숭고한 ‘생명나눔’ 더 안전해진다
장기·인체조직 기증… 숭고한 ‘생명나눔’ 더 안전해진다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12.06 10:54
  • 호수 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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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이력 알 수 없던 인체조직 기증도 국가가 관리 추진
▲ 장기기증 인식 확산을 위한 범국민 운동 ‘생명의 숲 가꾸기’ 캠페인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시청에서 배우 김유리(왼쪽 두 번째부터), 강종필 서울시 복지건강실장, 박진탁 장기기증운동본부장, 이효정 ‘좋은사회를위한100인’ 이사장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장기이식 절차 간소화로 활성화 기대… 예우 제도 보완해야 성과


지난 10월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뉴스를 보고 있던 김모씨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TV에서는 치매를 앓은 사람의 피부와 뼈, 근막 등이 수천명에게 이식됐다는 앵커의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모씨는 얼마 전 운영하던 신발공장에 불이 나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피부 이식을 몇 차례 받은 참이다. 뉴스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피부를 주고 간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렸지만 치매 걸린 피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인체조직 기증은 피부, 뼈, 인대, 근육, 혈관, 심장판막 등을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1명의 기증자가 최대 100명을 살릴 수 있지만 장기기증과 달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기증 희망자도 적은데, 여기에는 제도 미비로 인한 관리 부실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걸린 인체조직이 환자에게 그대로 이식된 일이 단적인 예다.
지난 10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치매를 앓은 기증자 6명의 인체조직 106개가 2831명에게 이식됐다고 밝혔다. 치매, 간염에 걸린 사람의 조직은 이식 대상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올 수 있어 이식이 금지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식이 금지된 질환을 진단받은 적이 있는 사람의 인체조직이 잘못 이식된 사례는 최근 3년 동안 50건이 넘는다. 신 의원은 3년간 인체조직을 기증한 뇌사자와 사망자 620명의 질병 내역을 분석해 이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이처럼 병든 인체조직이 이식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기증자의 병력을 유가족에게만 확인하는 현행 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조직은행이 인체조직을 채취해 혈액검사와 세균학적 검사를 벌여 질병 유무를 확인하지만 과거 질병이력은 확인할 수 없다. 인체조직은 국가가 통합관리하는 장기기증과 달리 민간 병원 및 단체가 각자 관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기록을 보면 질병 이력 확인이 가능하지만 법령 미비로 관리감독 기관인 식약처조차 접근할 수 없다.

인체조직 대부분 수입에 의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인체조직도 장기기증처럼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체계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지난 5월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인체조직 기증자 등록부터 관리, 이식까지 주관하는 국립 기관을 만들어 병원 및 심평원 등과 협력해 기증 불가 조직을 차단하는 한편 잠재 기증자 발굴에도 나선다는 것이 핵심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 혈액 등과 같이 인체조직 역시 국가가 관리하면 이식재가 안전한지 추적조사가 이뤄져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만큼 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도 늘 것”으로 기대했다.
인체조직을 이식받는 사람은 2011년 기준 27만명. 그러나 기증이 턱없이 부족해 76%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수입된 이식재는 환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그나마 5년 전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가 설립되고부터 기증자가 많이 늘었는데도 아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기증지원본부 박창일 이사장은 “해외 이식재 의존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기증된 조직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이는지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식대기자 2만여명 애타
장기기증은 그간 약간의 희망을 안겨줬다. 지난해 뇌사 기증자가 409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질병관리본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뇌사 기증자는 2006년 141명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기증자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식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모자란 상태. 2013년 9월 현재 이식 대기자는 2만5000명이 넘는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뇌사 기증은 한 사람이 최대 9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아름다운 생명나눔”이라며 뇌사 기증자가 많아지기를 바랐다.
장기기증은 사후기증과 생존시 기증, 그리고 뇌사기증 등 세 가지로 나눠진다. 일반 사망 후에는 각막만 기증이 가능하며 심장이 완전히 정지한 후 6시간 이내에 이식이 이뤄진다. 생존시 기증은 산 사람이 건강할 때 간장, 신장 등을 기증하는 것으로 가족 기증이 대부분이다. 가장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뇌사 기증이다. 이식이 가능한 장기가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췌도 소장 안구 골수 등 9가지다. 따라서 뇌사 기증자가 늘면 이식 수혜자도 늘게 된다. 뇌사는 흔히 교통사고나 갑작스런 질환으로 발생한다. 뇌사 추정자가 나타나면 뇌사판정을 하게 된다. 이때 복지부가 지정한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려 2회에 걸친 조사 끝에 출석인원 전원이 찬성했을 때 뇌사자로 판정한다.

뇌사자 최대 9명 살려
흔히 뇌사 기증을 꺼리는 이유는 식물인간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관계자는 “사망 전인 사람의 장기를 꺼낸다는 잘못된 상식이 널리 퍼져 있는데 뇌사는 뇌의 모든 조직이 사망한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떼면 심장도 정지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식물인간은 대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지만 뇌간이 살아 있는 상태이기에 회생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뇌사는 모든 뇌 기능이 정지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공 호흡기를 부착하면 맥박, 체온, 호흡, 혈압은 일시적으로 유지하지만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길면 2주 안에 심장이 멈춘다.
뇌사시 기증을 원하는 사람은 희망등록과 함께 반드시 가족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 뇌사 판정을 받고 실제 기증이 이뤄지는 시점에서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인인증서 없어도 희망등록 가능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관념이 장기 및 인체조직 기증을 막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장기기증 문화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자에게 적합한 예우가 뒤따라야 할 것이 지적된다.
현행 장기기증자에게 주어지는 예우는 뇌사자에 한정한 장례지원이 전부다. 오히려 생존시 기증자는 취업, 보험가입시 불이익을 받는 황당한 경우도 빈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이식관리센터는 2011년 신고센터를 열어 문제해결에 나섰지만 적발되더라도 과태료 500만원만 물면 될 뿐이어서 실효성 지적이 제기돼 왔다. 다만, 최근 일선 관계자들 사이에서 예우 차원의 취업 인센티브가 논의되면서 사회적 편견 해소에 대한 기대감을 소폭 높이고 있다.
기증자에 대한 예우 프로그램이 미비한 것은 장기기증의 본래 정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각 관련 단체는 장기기증에 대해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장기를 주어 생명을 살리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대가성이 있으면 기증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증된 장기 이식은 안전하게 이뤄진다. 사후기증시에는 의료진이 기증자를 검진하고 병력 중 암, 매독 등 중증질환이 있으면 이식 불가 판단을 내린다.
기증 희망자는 우편, 팩스 신청과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등록이 가능하다. 관련 기관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등록은 과거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했지만 올해 4월부터 휴대폰 인증으로 절차를 간소화했다.
뇌사 판정을 받는 일이 드문 어르신들이 장기기증을 고려한다면 사후 각막기증이 적당하다. 국립이식관리센터 관계자는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을 혼동하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시신기증은 의과대학 연구용으로 사용되다 1~3년 후 연구가 끝나면 화장해 가족에게 전달해 드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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