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서울 응암동 구순 어르신이 남긴 새해 숙제
[금요칼럼] 서울 응암동 구순 어르신이 남긴 새해 숙제
  • 이재모
  • 승인 2014.02.07 14:31
  • 호수 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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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유학시절 경제대국 일본의 수도 동경 한복판에서 어느 할머니가 “이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다”라는 글을 일기에 마지막으로 남긴 채, 외롭게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돼 일본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처럼 무연사(無緣死) 또는 고독사(孤獨死)로 불리는 노인들의 죽음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2010년 1월 일본의 NHK방송은 일본에서 한 해 3만2000명이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특별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했다.
지난 2010년 부산의 ‘다세대 주택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70세 할머니’, ‘농가 마당에서 5일 만에 발견된 82세 할머니(2010, 청원군)’, ‘혼자 살다가 숨진 지 4일 만에 발견된 71세 할머니(2011, 광주광역시)’, ‘사망한 지 5년 뒤에 백골이 되어 발견된 67세 할머니(2013, 부산)’…. 최근 이러한 고독사는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1월 31일 갑오년 새해 설날 아침에 자녀를 일곱이나 두었지만 서울 응암동의 10만원짜리 자신의 월세방에서 쓸쓸하게 혼자 숨진 91세 정모 어르신. 사망한 지 3일이 지나도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고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는 가족이나 친지의 방문도 없었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201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노인은 61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2.2%이다. 이 중 독거노인은 125만명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20.4%에 달한다. 더구나 독거노인은 2020년 174만명(21.6%)으로 늘고 2030년에는 282만명(22.2%)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2025년 1000만명)과 독거노인의 급증은 고독사에 노출된 잠재적 위험군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고독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돌봄 기본서비스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요양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방문(주 1회)과 안부전화(주 2~3회)를 통해 안전 확인 및 말벗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또 월 2회 이상 보건·복지·문화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지역 내 민간 복지서비스 기관과의 연계도 지원한다.
문제는 정부가 우리나라 노인들이 한 해 얼마나 고독사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통계는 물론 추정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고독사를 무연사회(無緣社會)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다. 무연사회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라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무연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촌락사회와 지역공동체로 대표되는 유연사회(有緣社會)에서 벗어나고자 우리가 스스로 무연이 되기를 희망하며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즉, 오늘날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핵가족, 이혼, 독신, 독거노인 등은 개인의 자유를 찾아 스스로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인의 고독사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노인의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가. 지금의 무연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유연사회로 돌아가야만 해결 가능한 것인가? 정부의 책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개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머릿 속에 질문들이 스쳐지나가는 청마의 새해 아침, 서울 응암동 정모 어르신의 명복을 빌며, 우리나라 노인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모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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