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와 국악단… 기업인의 나눔과 베풂에 찬사를 보낸다
진돗개와 국악단… 기업인의 나눔과 베풂에 찬사를 보낸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3.14 15:29
  • 호수 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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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취재수첩

우연히 TV를 보다 ‘어떻게 그런 일이…’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진돗개가 영국에서 개최한 세계 명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진돗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품종이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건 우물 안 얘기일 수도 있다. 세계에는 내로라하는 명견이 허다하다. 주인 말 잘 따르고 도둑 잘 잡고 용맹하며 수천리 떨어진 곳에서도 자기 집을 귀신같이 찾아온다는 식의 스펙은 다른 나라 명견도 기본일 것이다. 솔직히 그날 영국산 목양견 콜리나 ‘플랜더스의 개’로 유명한 보비에 드 플랜더스 등 기름이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개들 사이에 끼어 있던 진돗개 암수는 ‘없어’ 보였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던 진돗개는 가슴도 떡 벌어지고 털도 풍성했지만 대회에 참가한 수놈은 털 색깔도 누르스름하고 꺼칠꺼칠해보였고 덩치도 크지 않았다. 암놈은 또 왜 그리 작고 초라해보였는지.
다음날 해답을 얻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크러프츠 도그쇼를 22년째 후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후원국 개라고 해서 함량 미달에 트로피를 내줄 리는 없다. 그러나 조금 모자라지만 대회의 존폐를 쥐고 있는 나라의 개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건 소치 동계올림픽의 김연아 금메달 새치기 사건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여기서 사실로 드러나지도 않은 진돗개의 자격미달(?)을 멋대로 상상해 준우승의 영광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기업의 사회환원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싶어 이 얘기를 꺼낸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개사랑은 유별나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의 외로움을 개와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달랬다고 한다. 이 회장은 천연기념물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리기 위해 세계품종협회를 직접 찾아다니기도 했다. 삼성화재는 국내에서 유일한 맹인안내견 보급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빛과 반려견을 한꺼번에 얻는 행운을 얻는다. 올해 두 명의 여성 시각장애인의 대학 졸업식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여학생들 옆에 앉아 있는 맹인안내견도 주인과 함께 나란히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감동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강단에 선 또 다른 두 여성의 곁을 떠나지 않는 맹인안내견 사진도 있다. 이 안내견은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까지 주인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이 후원하는 락음(樂音)국악단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락음은 ‘즐겁고 행복한 음악예술’이란 의미로 윤 회장이 직접 지었다. 윤 회장은 기업 경영 중 한 때 어려운 시기를 맞아 자살까지 떠올릴 정도였다. 어느 날 산에 오르다 우연히 대금 소리를 듣고 힐링이 됐고, 그 계기로 단소를 배우며 재기의 힘을 얻어 기업을 정상화시켰다고 한다. 윤 회장은 음악이 창조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고, 자신의 경험을 직원들도 함께 느끼도록 전사적으로 국악을 배우게 했다. 그 결과 이 회사 직원 100명은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철가’ 떼창을 연주하기도 했다. 윤 회장 덕분에 젊은 국악인은 취업의 기회를 얻었고 침체된 국악 분위기도 활기를 띠게 됐다. 그의 국악 열정은 아리랑으로 옮겨 붙었다.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아리랑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락음국악단의 공연 중 새롭게 감동을 받은 무대는 굿판이었다. 처음엔 무당의 요란한 굿을 연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한국의 굿은 음악·춤·복식·무가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돼 전통예술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한다. 판소리가 서사무가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고, 민속무용의 춤사위가 무당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장구·소리북·아쟁·대금·피리·해금·징 등 7명 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소리꾼 김율희 씨가 절제된 춤사위와 함께 애절한 가락을 뽑기 시작하자 단숨에 매료됐다. 김씨는 독특한 디자인의 흰 모자에 하얀 한복을 입었다. 특히 어깨에서 다리까지 흘러내린 폭 넓은 붉은 띠는 강렬했다. 종이를 길게 잘라 꽃다발처럼 수북하게 묶어 부채나 방울처럼 리드미컬하게 흔드는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신선했다.
윤 회장과 이 회장의 열정, 나눔과 베풂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소중한 국악 체험은 못했을 것이며, 시각장애인의 절실한 꿈도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기업의 사회환원사업이 지원의 스펙트럼을 더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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