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해체,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해경 해체,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5.23 14:03
  • 호수 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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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세상읽기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경을 해체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연 그 방법이 최선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60여년 어부의 생명과 대한민국 3면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 자원을 지켜온 조직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려도 되는 걸까? 해경의 시초는 1953년 내무부 치안국 소속으로 발족된 해양경찰대다. 292명의 희생자를 낸 서해 페리호 참사 이후 전문 구조구난의 필요성이 제기돼 96년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했다. 이후 2005년 차관급 외청으로 승격돼 빠르게 조직과 예산을 늘려왔다. 해경의 업무는 해상경비, 구조구난, 오염방제, 수사·정보 등이다.
과연 해경을 해체한다고 해서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경우 매끄럽게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막강한 ‘슈퍼 해경’이라도 등장하는 걸까. 물론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의 무능함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겁내 300여명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무능력한 집단, 혈세만 축내는 ‘거머리’ 같은 조직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해경의 인력 7000명이 새로 생겨나는 재난통합기구 ‘국가안전처’로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이름만 다를 뿐 ‘그 밥에 그 나물’인 셈이다.
해경 내부에서조차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 직원은 “사건 초기에 우리가 대응을 잘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 뒤로 구조 활동에 최선을 다해왔는데 모든 책임을 해경에만 떠넘기는 것 같다. 지금은 해경이 국민에 대한 죄인이 돼버려 아무 말도 못하는 처지지만 그래도 그동안 해경이 나름대로 해 온 역할들이 한 번에 너무 쉽게 잊힌 것 같아 맥이 빠진다”고 했다.
해경 내부뿐만 아니다. 공직사회가 이런 조치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이다. 많은 공직자가 이번 대통령의 제안이 실제 필요한 조치보다 지나친 과잉대응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공직내부에서 저항에 가까운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항만청 폐지 등을 주장하다 당시 경제기획원·내무부·건설부 공무원들의 집단 저항으로 포기했다. 김대중 정부가 해수부를 없애려고 할 때도 해수부 관료들은 산하단체들을 움직여 연일 폐지 반대 로비를 전개했다. 대통령이 여론을 동력 삼아 밀어붙이더라도 공직 사회를 설득하는 노력도 함께 하지 않으면 해경 해체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무리한 조직개편은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다. 광우병촛불시위를 비롯해 무슨 일만 터지면 거리로 뛰쳐나와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상습시위꾼들은 엉뚱한 이유를 대며 또, 불법시위를 자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해경을 없앨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들이 또 다른 재난 담당 부서에 남아있는 한 세월호 때보다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을 테니까.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만 해도 해경에 대한 인식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해경은 중국의 불법조업어선들을 물리치고, 독도를 경비하며, 외항선을 통해 들어오는 마약을 적발하는 등 목숨 걸고 책무를 다하는 충실한 공복이었다. 실제로 2011년 인천경찰 이청호 경사는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다. 그 외에도 바다에서 아까운 젊은 해경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해경이란 조직을 해체하고 구성원들을 국가안전처로 보낼 바에는 해경을 그대로 남겨둔 채 내부적으로 조직 개편 등을 통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이제는 ‘모 아니면 도’식의 해법은 그쳐야 한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무능함은 미워하되 조직은 남겨두는 것이 낫다. 큰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 기구를 해체한다면 그 나라는 머잖아 남아나는 기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은 채 해경 간판을 떼어내고 새 간판을 만들어 붙이고, 책상과 의자를 바꾸는 식의 조직개편이라면 아까운 혈세만 낭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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