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노인의 비애
기고-어느 노인의 비애
  • super
  • 승인 2006.08.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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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열 연기 명예기자

지하철 입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버스정류장의 한 모퉁이에서 종종 남루한 옷차림으로 쪼그리고 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분명 그 중 일부는 패기왕성 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각 분야에서 자기 본 업무에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활동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지난 일들을 되새겨볼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 목숨이나 근근이 연명해야겠다는 일념뿐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나이 먹은 것이 이렇게 서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몇 달 전 한 일간지에 실린 ‘아들을 고발합니다’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현실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큰 충격과 허무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칼럼에는 아들에게 상처 받은 아버지가 자식의 잘못을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달라는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생활고로 아들의 중학교 등록금을 낼 수 없게 된 아버지가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친구는 단칼에 거절을 했고,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훔쳐야만 했다. 그 벌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고, 세상에 나온 후 건축업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전철에서 껌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사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왼쪽 다리가 마비되며 움직일 수 없게되자 그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들을 찾게 됐다. 그동안 아들을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며 아들에게 무릎을 꿇어 잘못을 빌고 자신을 받아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주기는커녕 멱살을 잡고, 내 던지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육두문자와 함께 문적박대를 했다는 서글픈 이야기였다.

 

필자는 글을 읽는 내내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 어른으로서의 자괴감마저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불효막심한 패륜아 때문에 열심히 부모를 모시는 효부·효자들까지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매도되고 있음이 실로 안타까웠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필자 측근 중 교육계에서 40여년간 몸을 담고 열심히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온 선배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자식들이 냉대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애지중지 키워 명문대학까지 가르친 아들이 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께 효도는 못할 망정 하루가 멀다하고 윽박지르고 돌보지도 않았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가정에서 편히 쉬라던 어느 집권당 간부의 사려 깊지 못한 말을 비롯해 노인들이 홀대 받는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를 빙산의 일각으로만 치부하는 현실에 또 한번 아쉬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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