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과 박원순의 정치 운명
정몽준과 박원순의 정치 운명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6.09 10:34
  • 호수 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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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세상 읽기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당선자는 “저의 당선은 세월호 사고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던 시민 모두의 승리”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인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인명을 구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한 시민들이 그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말이다. 맞는 얘기지만 박 후보의 당선 배경에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핵심을 비켜간 선거 전략과 미숙한 네거티브 공략이 한몫을 했다.
정몽준 후보는 부자다. 재산이 2조400억원에 이른다. 이걸 십분 활용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즉, 정 후보는 서울시민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바칠 수도 있다는 통 큰 공약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런 비장의 히든카드 없이 정 후보는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네거티브 공략에만 몰두했다. 선거운동 내내 박 당선자의 시정 운영 폄하, 이념 문제, 서울시 부채, 농약급식만 물고 늘어졌다. 농약급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집단으로 배탈이라도 났다면 몰라도 페이퍼 상의 농약수치만 자꾸 들이대는 건 ‘어거지 생떼’에 불과하다. 새누리당 서청원 공동대책위원장도 “정 후보는 오페라하우스와 같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하지 않은 것도 하고 근사한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어딜 가도 농약급식, 농약급식만 말했다”고 아쉬워했다.
정몽준 후보는 자기 표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정확히 판독하지 못했다. 20~30대의 청년층은 언감생심이다. 청년실업자 100만명의 시대가 아닌가. 40대 중년도 더 이상 과거의 보수가 아니다. 무늬만 보수지 속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진보이다. 구원투수는 60~80대이다. 이들은 정 후보 아들의 SNS상 ‘국민 미개’라는 말로 상처를 받긴 했지만 기꺼이 표를 내줄 아량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는 이들을 끝내 감동시키지 못했다. 노인을 위한 공약은 ‘코끼리 비스켓’처럼 지하철에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게 고작이었다. 구체적으로 노인 빈곤·노인 일자리·노인 고독사 등에 대한 재벌 출신다운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 후보는 이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지난 5월 초, 2년여를 끌다 극적으로 타결됐던 ‘기초연금’이 그것이다. 예산을 확보해놓고도 야당의 끈질긴 반대로 국회에 보류된 채 하마터면 7월에 지급이 무산될 뻔했던 그 기초연금 말이다. 새누리당과 대한노인회의 땀과 노력으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점을 선거에 적극 활용했더라면 서울의 115만 노인 표 상당수를 흡수하는 계기가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차기 대권 후보 간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1000만 시민을 이끄는 서울시장 자리는 차기 대권으로 가는 사다리가 될 수도 있다. 정몽준 후보는 그동안 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도록 하겠다며 거듭 대선 출마를 부인해 왔지만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는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그의 마지막 승부수로 여겨졌다. 그는 26년 유지해오던 국회의원직까지 내놨다.
박원순 당선자는 조용한 선거, 네거티브 없는 선거를 내세우며 공식 출마를 선언한 이래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유세차 없이 배낭과 운동화 차림으로 서울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며 시민들과 만났다. 특히 ‘네거티브 제로’ 원칙을 내세워 최대한 비방·폭로전을 자제했다. 이 때문에 여당 후보가 공격하고 야당 후보가 방어하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박원순 당선자는 이제 대통령에 한발자국 다가갔다. 정치권은 벌써 그가 야권 차기 구도에 미칠 영향을 주목한다. 박 당선자의 서울 선거를 지원하는 입장이었던 안철수 공동대표나 문재인 의원 등과의 관계가 경쟁 관계로 뒤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박원순’이라는 말도 들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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