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90㎞ 질주… 늙지 않았다는 거 보여주고파
시속 190㎞ 질주… 늙지 않았다는 거 보여주고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6.13 11:51
  • 호수 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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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국토종단 한명수 전 숭실대 교수

새벽 6시 서울 출발,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480여 ㎞ 달려 당일 오후 3시 제주항에 도착


“멋진 동문을 위해 박수, 짝짝짝~.”
지난 6월9일 오전 11시, 제주공항 한켠에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경기고 1964년 졸업생들의 졸업 50주년 제주여행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한명수(68·사진) 전 숭실대 교수를 반갑게 맞이하는 광경이었다.
한 전 교수는 전날 일요일 새벽 6시, BMW GS(배기량 1200cc)를 타고 경기고 옛터인 서울 정독도서관을 출발해 평택-서천-군산-무안-목포를 거쳐 6시간여만인 오후 12시 10분 경 해남 우수영항에 도착했다. 처음엔 50주년을 상징하는 의미로 50개 지방도시를 들러 기념촬영하며 천천히 내려가기로 했다가 시간 관계상 ‘촬영 없는 직행’을 택했다. 우수영항에서 오토바이를 배에 싣고 3시간여 만에 제주항에 도착, 제주시내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 공항에 나간 것이다.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쉬지 않고 내달렸어요. 순간적으로 200km를 넘은 구간도 있었지만 150~190km의 속도를 유지했어요. 다행히 속도위반으로 딱지도 떼지 않았고 사고도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나선 은백의 신사들과 우아하게 나이 든 부인들 260여명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한 전 교수의 옆자리는 허전했지만 날렵한 디자인의 오토바이가 그 자리를 대신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동기생들은 혼자 국토종단을 한 친구의 도전과 용기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표했다. 그가 편안하게 비행기를 타지 않고 위험하고 불편한 오토바이로 여행길에 오른 계기는 한 동기생의 넋두리 때문이었다.
“떠나기 전날 한 친구가 ‘카톡’으로 인생을 거론하다 ‘70대 노인’이란 말을 올린 걸 보고 우리는 아직 젊고 얼마든지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한 전 교수는 59세인 2005년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취미생활이나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토바이는 오래전부터 타고 싶었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이유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들자 대형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소형2종 면허시험에 도전했다.
“학교 운동장에 줄을 그어놓고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하고 시험을 봤지만 내리 일곱 번을 떨어졌어요. 매일 새벽 잠원동 집을 나와 40km 떨어진 운전면허학원을 찾아가 2시간씩 연습을 한 덕에 8번째에야 합격할 수 있었어요.”
가장 먼저 한남동 ‘할리데이비슨코리아’를 찾아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1450cc ‘소프테일 디럭스’를 구입했다. 당시 가격이 3000만원 대였다. 이탈리아제 스쿠터도 장만했다.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에 가입해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투어를 나갔고, 학교 출퇴근에 두 기종을 번갈아 타곤 했다.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의 1년 주행거리는 1만km 내외다. 자동차와 달리 눈·비가 와 타지 못하거나, 경제 활동으로 시간 여유가 없어서이다.
그런데 한 전 교수는 2만km를 훌쩍 넘는다. 최단시간 주행거리 첫 10만km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워 ‘할리데이비슨코리아’로부터 가죽점퍼를 선물로 받은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3년 전 은퇴 이후에는 총주행거리가 부쩍 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토바이를 타고 강원도 화진포에 갑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앉아 맥주 한잔 앞에 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함을 느끼거든요.”
나이 들어 오토바이를 타는 것에 대해 묻자 “나는 한 번도 늙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48세에 테니스를, 53세에 스키를, 55세에 수상스키를 배웠다”며 “어제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할 수 있다면 늙은 게 아니다”고 대답했다.
그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일반인의 생각에 대해서도 “위기에 처했을 때 부부애가 강해지듯이 위험에 노출됐을 때 오토바이와 하나 되는 느낌도 더 강해진다”며 웃었다.
한 전 교수는 오토바이를 타고부터 자동차 핸들을 잡는 일이 거의 없다. 그는 “자동차가 그림 앞을 지나가는 것이라면 오토바이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말했다.
앞으로 85세까지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한 전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파리 고등사회과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7대학 강사, 국제정치학회 이사, 숭실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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