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김창열 씨가 예술원 회원 탈락한 숨은 이유
백건우·김창열 씨가 예술원 회원 탈락한 숨은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7.04 13:28
  • 호수 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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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세상 읽기

예술원 회원은 매달 180만원의 수당을 지급 받는다. 30년 월급생활자의 국민연금보다는 많고 사학·군인연금보다는 적다. 지난 6월, 대한민국 예술원은 천경자 화백에게 이 수당 지급을 정지한다고 했다. 1998년 미국 뉴욕으로 떠나 현재 딸과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천 화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서이다. 예술원 측은 “돌아가신 게 아니냐는 소문이 있어 확인하기 위해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살아 계신다고 했다”며 “하지만 입증자료를 요청했으나 제출하지 않아 수당 지급을 잠정 보류했다”는 것이다.
예술원 회원은 예술경력 30년 이상으로 예술 발전에 큰 공적이 있는 원로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예술계 최고의 권위다. 4년 임기제이지만 연임이 가능한 사실상 종신제로 현재 87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예술원 회원 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피아니스트 백건우(68)씨와 ‘물방울 화가’로 이름난 서양화가 김창열(85)씨 두 사람이 예술원 회원 추천 투표에서 탈락했다. 백건우 씨는 10세 때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데뷔한 뒤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연주자이다. 2010년엔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김창열 화백도 한국을 대표하는 생존화가 3위(미술시장 전문지 ‘아트프라이스’ 2010년 조사)로 꼽힐 만큼 유명 화가이지만 예술원 진입에는 실패했다.
대한민국 예술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분과로 구성돼 있다. 신입 회원은 해당 분과 회원이나 예술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교 총장 등의 추천과 해당 분과 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정해진다.
대하사극 ‘조선왕조 5백년’을 쓴 극작가 신봉승(81)씨도 예술원 회원 지원에 세 번 낙방하고 네 번 만에 간신히 합격(?)했다. 신씨는 69세 때, 예술원 회원인 이근삼 전 서강대 교수(2003년 작고)로부터 “예술원에 들어와라. 그래도 늘그막에는 거기가 괜찮은 곳이다”는 말을 듣고 예술원 문을 두드렸다. 신씨의 경우는 연극·영화·무용 분과의 회원으로 선임돼야 했다. 당시 해당 분과의 예술원 회원은 김동원·이원경·장민호·차범석·이근삼·김정옥·유현목·김수용·김천흥·김백봉·임성남·송범 선생 등이었다. 이들 12명 가운데 8명이 찬성을 해야 가능했다. 신씨는 이들과 오랜 세월 비슷한 분야에서 얼굴을 보며 일을 해온 터라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다.
그런데 입회원서를 낸 첫해에 7명의 찬성을 얻어 한 표가 부족해 낙방했다. 다음해에도 역시 한 표가 부족해 낙방했다. 세 번째 해에도 낙방의 쓴잔을 마시자 신씨는 더 이상 예술원 회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했다. 신씨는 “그 불가사의함을 헤아릴 길이 없다. 길에서 만나면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 사이다. 그런데도 예술원 회원의 입회를 허락하는 표를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신씨는 이근삼 전 교수의 격려와 용기에 힘을 얻어 다음해 도전해 예술원 회원이 됐다.
백건우·김창열 화백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가들이 단번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지 못하는 데에는 그들의 예술적 내공이나 예술 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통과 의례 가운데 ‘텃세’도 있을지 모른다. 신봉승 씨가 연거푸 낙방하고 자존심도 상해 포기를 선언했을 때 이근삼 전 교수가 한 말이 그걸 암시한다.
“야, 너만 그런 줄 아네. 다들 겪었다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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