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극 보는 재미… 노인들 고독·우울감 날린다
무언극 보는 재미… 노인들 고독·우울감 날린다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7.25 14:46
  • 호수 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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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논현노인종합복지관‘몸더쿵 마임극단’
▲ 강남 논현노인종합복지관‘몸더쿵 마임극단’의‘동병상련’팀이 자살 예방을 위한 무언극을 연습하고 있다.

국내 최초 시니어 마임극단… 8·9월 자살예방 캠페인 공연
어르신들이 직접 스토리 구상…“자살자 한명이라도 줄면 보람”


삐그덕 소리가 날 것 같은 무릎을 굽히고 펴기를 여러 번, 마치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동작을 연상케 하는 발동작이 완성된다. 표정과 몸짓으로만 내용을 전달하는 무언극 마임(mime)을 연습하고 있는 이곳은 강남구 논현노인종합복지관 강당.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몸더쿵 마임극단’ 단원들이다.
‘몸더쿵 마임극단’은 평균연령 70세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 시니어 마임극단이다. 강남구에서 논현동의 자살률이 높은 점을 감안해 논현노인종합복지관이 자살예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했다. 배지애 사회복지사는 “서울에서 강남구 자살률은 낮은 편이지만 강남구 내에서 논현동의 자살률이 높은 편이라 어르신들이 직접 공연을 하면서 자살 예방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마임은 어르신들이 대사를 외워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 단원 모집을 마치고 오는 9월까지 활동을 이어가는 시니어 극단은 오는 8월 중순부터 있을 자살예방 캠페인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과 5월, 몸 굽히기와 비틀기 등 ‘몸 다루기’와 마임의 기초 기술인 ‘면, 선, 공간 이해하기’ 강의를 통해 기초를 다진 단원들은 기본 동작으로 몸풀기를 마치고 조별로 자리에 앉아 연습 준비를 마친다. 이번 캠페인을 위해 12명의 단원은 3개 조로 나뉘어 약 20분간 마임 공연을 준비 중이다.
‘동병상련’ 팀은 각각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네 명의 단원이 각자 포즈를 취한 채 20여초 간 정지한 다음 오르골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한 사람씩 동작을 이어간다. 먼저 이종숙 씨가 전화 거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 한숨을 쉬면서 동작을 멈춘다. 두 번째로 이은구 어르신이 무엇인가를 다급하게 찾는다. 찾는 것이 나오지 않자 약을 먹을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먹지 않고 내려놓은 다음 동작을 멈춘다.
신현숙 어르신은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표현하다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가 났는지 몸을 튕기는 모습으로 동작을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김지오 어르신이 큰 한숨을 반복해서 쉬다가 머리를 감싸며 괴로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동작을 멈춘다.

어르신들 적극적 참여 눈길
모든 동작을 멈춘 조원들은 얼마 간 멈춘 자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오르골 소리에 맞춰 서서히 뒷걸음질 친다. 뒷걸음질 치다가 등이 부딪치자 서로를 바라보는 조원들. 눈빛으로 교감한 후 서로를 토닥거리며 위로한다. 이어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공연은 마무리 된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외로움, 사기를 당해 음독까지 생각하는 좌절감, 행복한 순간에 예고 없이 겪은 교통사고,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우울감. 이렇게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누군가 만나서 이해받고 이해하는 순간을 경험하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연습 중간 중간 스스럼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단원들과 강사의 모습이다. “여기에서는 소리를 내도 되지 않을까요?” “동작을 더 크게 하는 게 좋겠죠?”라며 강사에게 의견을 묻는가 하면, 앉아서 지켜봐주던 다른 팀원들은 “그렇게 하면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지 않은데?” “발이 잘 안 맞아”라며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사랑’팀과 ‘반전’팀이 연습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 팀은 어머니의 사랑을 잊은 채 쉽게 좌절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내용을, ‘반전’ 팀은 자살에 대한 반전 스토리를 그려냈다.
극단을 이끄는 김봉석 강사는 “이번 공연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 목적”이라면서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이 활동으로 먼저 에너지를 얻고 보는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받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다행히 어르신들이 매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언극의 3개 스토리는 모두 12명의 실버 단원들이 직접 만들었다. 서로 아이디어를 내어 대강의 스토리가 정해지면 실제로 극을 진행해보면서 김 강사의 조언을 받아 몸짓과 표정, 도구 등을 보강했다.

▲ 김봉석 강사와‘사랑’팀이 동작을 수정하고 있다.

공연과 상담 병행할 예정
단원들의 이런 열정은 지난 5월 열렸던 ‘춘천마임축제’에서도 빛났다. 원래 춘천마임축제는 1박 2일간 직접 공연을 보는 워크숍으로 기획됐지만 김 강사의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라는 한 마디에 ‘관람’ 일정이 ‘공연’ 일정으로 바뀌었다.
김 강사는 “공연 때 동작을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틀린 부분이 표시나지 않게 서로 맞추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대사 없는 공연 중에 유일하게 ‘띵호와’라는 감탄사를 외치는 반전 팀 노숙자 역의 김영자 어르신의 발목에는 고무줄로 고무신이 묶여 있다. 김 어르신은 “서울역에 갔을 때 노숙자를 보니 발목에 신발을 묶어 놔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노숙인들이 가져간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나도 따라 묶었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어느새 캐릭터 연구까지 하고 있었다.
자살 예방 프로그램의 일환인 만큼 공연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르다. 김지오 어르신은 “이 마임을 보면서 1명이라도 자살자가 줄어든다면 큰 성공”이라며 “약간의 예방차원만 되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니어 극단이 진행할 자살예방 캠페인은 강남구 보건소와 협력으로 오는 8월 20일과 22일, 9월 3~4일 4차례에 걸쳐 수서1단지 아파트와 지하철 역(논현역, 신논현역) 등에서 부스를 설치해 공연과 상담을 병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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