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이름값 못한 유병언
죽어서도 이름값 못한 유병언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7.25 15:11
  • 호수 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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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세상 읽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몸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존재감은 사후에도 남아 후세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죽을 때도 잘 죽어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 흔적이 남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죽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동안 처신을 잘하고 죽은 후에도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하고 떠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1946~2009)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를 애도하는 물결이 광화문과 시청을 뒤덮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슬픔을 나누었다.
자살할 당시 부인과 두 자녀가 기업으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받은 것이 드러난 상황이었고, 그 사건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연루가 됐는지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가족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걸 막고, 살아서 자존심이 짓밟히는 걸 피하는 방법은 자살 즉, ‘공소권 없음’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의 핵심 인물 유병언씨가 ‘죽음’으로 나타났다. 그의 죽음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상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는 애도가 따랐지만 그의 죽음엔 수많은 의혹과 비난, 원망과 질타뿐이란 사실이다. 세상에 죽고 나서도 이처럼 구설수에 오르기도 쉽지 않다.
왜 그의 죽음을 두고 말들이 많은가. 그가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세월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294명과 여전히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10명의 원혼을 달래주는 속죄의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그는 어린 학생들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참사에 대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고 무릎 뼈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용서를 빌고 그에 대한 죄 값을 받아야 했다. 자신과 가족의 전 재산을 내놓아 사고 피해의 일부라도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부패한 공적, 사적 연결고리를 만천하에 공개해 ‘국가 적폐’의 실체를 밝혀주었어야 했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가. 이 시간에도 원인 규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일차적 원인은 다 밝혀진 셈이다. 청해진해운의 선박불법개조, 과적운항, 낮은 인건비 등이다. 규정을 어긴 채 무거운 화물을 싣고 초보 항해사가 험한 항로를 지나다 운항미숙으로 저질러진 인재였다.
유병언씨가 양심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일본에서 처음 만들었던 그대로의 선박에 정해진 무게의 화물을 싣고 월급을 제대로 받는 숙련된 항해사가 배를 몰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
유병언씨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구원파의 운명을 정해주어야 했다. 구원파는 겉으로는 유병언과 자기들이 관련 없다 면서도 유씨를 감싸고 도피행각을 돕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등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구원파의 잘못된 점이 어떤 것들이고 유씨 없는 구원파가 어떻게 변신해야 할지를 유씨가 가르쳐주어야 했다.
그가 또 용서와 참회를 구해야 했던 건 ‘오대양 사건’이다. 1987년 8월, 용인시 오대양 본사 구내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사체가 발견돼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을 국민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유씨가 연루된 점이 포착됐으나 검찰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그 후 1991년 재수사를 벌여 신도들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유씨는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그가 입을 다무는 바람에 지금껏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유씨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도 속 시원히 밝혔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은 자신은 죽더라도 두 아들에게 자수를 하도록 해 속죄하고 인간답게 살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밭에 버려진 채 구더기가 파먹은 부패한 사체로 발견됐으면서도 동정은커녕 비난과 질책을 받는 건 죽어서도 이름값을 못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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