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일의 판자촌 ‘구룡마을’ 20년째 뒤숭숭
서울 유일의 판자촌 ‘구룡마을’ 20년째 뒤숭숭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7.25 15:12
  • 호수 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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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개발 논란… 서울시‧강남구 개발방식 놓고 여전히 대치
▲ 30년째 방치된 구룡마을과 건너편으로 보이는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묘한 부조화를 만들어낸다.

화재‧장마 등에 무대책… 소득 없는 주민, 개발 지연에 내심 안도


구룡산 밑 허름한 한 마을. 허리를 숙여야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높이의 집들이 몸 하나 들어갈 공간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여전히 LPG 가스통을 배달해 쓰고 골목 입구에는 언제 썼는지 모를 연탄재가 수북이 쌓여있다.
마을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서 내려다보아도 집집마다 얹어놓은 판자 지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워 입은 옷처럼 다양한 재질로 된 판을 여러 개 덧댄 지붕과 그 위로 어지럽게 지나가는 전깃줄이 이곳이 서울 유일의 판자촌, 구룡마을임을 알려준다.
구룡마을은 1988년 올림픽 준비 일환이었던 1983년 개포동 주공아파트 건설로 그 일대에 무허가 건물들이 헐리면서 내몰린 주민들이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살면서 형성됐다.
80년대 형성돼 30여년이 흘렀지만 조심스럽게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4~5개를 이어붙인 공동화장실에서 나오는 주민과 종종 마주칠 정도로 여전히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이곳의 판잣집 하나에는 보통 화장실 없이 방 하나, 주방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을 ‘서울의 노른자 땅’이라 부른다. 양재대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는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보이는 이곳을 개발하면 강남 일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세가 형성되고 마을 뒤로 구룡산이 둘러쳐져 있어 경관도 빼어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룡마을은 8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개발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이른바 ‘딱지’로 큰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문제가 된 적이 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민간 업체와 LH주택공사 등이 개발 시도를 했지만 보상비 등의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의 가장 ‘핫(hot) 한’ 장소로 떠올랐다. 2011년 서울시가 발표한 ‘구룡마을 공영개발 정비계획’이 도시 개발계획 결정권자인 서울시와 재개발 인허가 승인권자인 강남구의 양보 없는 대치 아래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은 2012년 서울시가 협의 없이 사업 시행방식을 일부 환지 방식으로 결정하면서 빚어졌다. 처음 구룡마을 개발은 100% 공영개발 방식으로 하려고 했으나 토지 보상비를 줄여 개발비용을 낮추고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낮춘다는 명목으로 서울시가 일부 환지 방식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강남구는 토지주들에게 수백억원대의 개발이익이 돌아가 특혜라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오는 8월 2일까지 협의하지 못하면 개발 계획은 백지화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룡마을 개발계획 수립 시한이 지나더라도 개발구역 지정만 취소되는 것이지 사업자체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구역 지정이 취소되면 개발구역을 재지정,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8월 2일 전까지 강남구와 극적 타결을 하더라도 개발계획 입안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해 사실상 서울시는 개발구역 재지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어느 쪽 입장에 서 있을까. 마을 입구에는 서울시에 협조하지 않는 강남구를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주민자치회와 그에 속해있지 않은 주민, 여전히 개발보다는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사람들의 마음은 정작 한 데 모인 것 같지는 않다.
2011년 4월 서울시가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5월 강남구가 주민등록을 등재하면서 기대에 부풀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 되자 한 어르신은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이게 한 번에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서 “여기 가면 이 말, 저기 가면 저 말을 할 것이니 괜히 힘 빼지 말라”는 충고도 덧붙인다. 평상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몇 몇 주민이 “마을 사람들 모두 개발에 대해선 쉬쉬할테니 헛수고 말라”던 것과 같은 충고다. 마을 주민 모두가 한 뜻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주민자치회와 토지주협의회는 속히 개발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거주민 중에는 어떤 방식이든 개발을 마냥 환영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교회에 다녀온다는 한 어르신은 “이곳에서 87년부터 살았지만 하루하루 먹기가 바쁘니 이사 갈 준비도 못하고 살아왔다”며 “개발된다는 얘기는 있지만,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면 이곳에 계속 살겠느냐”고 되물었다. 공동 화장실을 쓰고 지붕에 담요를 덮어놔 방안에 습기가 차는 등 생활에 큰 불편을 겪으면서도 이처럼 모든 주민이 개발을 적극지지 할 수 없는 것은 역시 경제적인 이유다.
한 주민은 “혼자 어렵게 사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오히려 개발이 안 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며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나 고령연금, 후원 물품 등으로 빠듯하게나마 생활할 수 있지만,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임대아파트에 들어간다고 해도 임대료와 관리비를 어떻게 충당하겠느냐”고 말했다. 비용에 대한 부담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개발 방식에 따라 실제 거주민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 주민은 “서울시의 환지 방식은 민영개발이 아니냐”며 “서울시의 방식대로라면 임대주택이라도 돈이 더 비싸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가 주장하는 전면수용방식으로 개발했을 경우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5300만원에 월세 35만원, 서울시의 환지혼용방식을 사용하면 평균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9만원으로 임대료가 낮아진다.
강남구의 입장은 또 다르다. 강남구 관계자는 “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령에도 없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이야기”라며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해도 100% 수용해서 개발한 다음 개발이익을 주민들 임대료 절감하는 데 쓰면 될 일”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 사업은 거주민들의 주거안정이 목적인 사업으로 법령이 아니라 이 사업 내에서 개발계획을 구상하는 것”이라며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업 목적이 거주민 정착이므로 그에 맞는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이어서 “현재 거주민의 100% 정착화가 목표”라며 “평균 임대료가 월 19만원이라고 해도 월 5만원도 힘든 주민도 있을 텐데, 사업이 시작되면 소득에 따라 맞춤형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발 방식을 놓고 서로 “말이 안 된다”며 물러서지 않는 강남구와 서울시, 거주민과 땅주인, 마을 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지붕 위에 얽힌 전깃줄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구룡마을. 개발이 되면 서울 유일의 판자촌은 없어진다고 하지만 정확한 정보도 없이 생존을 위해 여전히 그곳에 머무는 거주민의 불안은 여전한 듯하다.
매년 장마 때마다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과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물로 금세 집이 잠기지만, 오늘도 구룡마을은 아무 대책 없이 방치된 채 30여년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공영개발 방식은 국가가 개발 대상 토지를 전면 매수해 실수요자에게 분양·임대하는 방식을 말하며 환지 방식은 토지주에게 보상금을 주는 대신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개발을 한 후 개발된 땅을 주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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