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간섭많은 어르신은 부담스러워”
[활기찬 노년생활] “간섭많은 어르신은 부담스러워”
  • 박영선
  • 승인 2007.04.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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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앞 절반은 父母 뒤 절반은 자식 때문에 ‘고민’

부모 자식 간에도 역할 조절이 필요
가두려하지 말고 자식들의 세계로

 

“우리 인생 중 앞의 절반은 부모 때문에, 뒤의 절반은 자녀들 때문에 망친다.”

 

자산법률 관련 미국의 유명한 변호사인 클래런슨 다로의 말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늙어서도 너무 속박이 강한 부모, 자녀간의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노년층이 의외로 많다.

 

일산에 사는 전모(65)씨는 올해 여든 다섯 된 고령의 아버지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번씩 새벽잠을 설치곤 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거주하는 전씨의 아버지는 새벽 5시 30분이면 장남에게 전화를 걸어 일일이 자식과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들에게 가르침을 하달한다.

 

“둘째 네는 함부로 이사하지 말라고 해라. 내가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일러라. 넷째 네는 인사가 통 없어. 전화 좀 하라고 하고, 여섯째 네는….”

 

일제시대를 거쳐 6·25를 겪은 후 자수성가로 일가를 일으켜 9남매를 키워 낸 전씨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도 대단한 성정을 자랑했는데, 고령이 되어서도 줄지를 않았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 기세가 누그러져야 하는데, 아직도 한창 시절의 전권을 휘두르려 한다는 것.

 

“아버님 당신이 직접 아들, 손자 집에 전화를 걸 수도 있는데 그러면 시외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남인 내게 대표로 새벽에 일어나시자마자 전화를 해서 둘째, 셋째 동생 집으로 전할 하달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런 생활이 삼십년이 넘었어요. 아내에게도 미안해요.”

 

전씨는 젊은 시절에도 싫었는데 예순 중반을 넘어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동생들은 직계니까 그렇다고 쳐도 서른이 넘은 손자와 손자며느리의 생활까지 간섭을 하려 드니 ‘아버지와 아들’ 삼대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꼼짝달싹 못 하겠다는 하소연이다.

 

‘이제 그만 날 놓아줬으면 좋겠다’는 절규는 연속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KBS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도 어머니인 김자옥이 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성인이 된 딸들은 ‘이제 엄마가 그만 놔주었으면…’하고 바란다.

 

성년이 된 자식에게 부모가 제일 크게 줄 수 있는 것은 ‘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을 떼는 것’. 그러나 전씨의 아버지나 드라마 속의 김자옥은 이를 모른다. 이들에게는 자식이 나이를 먹어 칠십을 바라봐도 아직 품안의 철부지 어린애처럼만 보이는 것이다.

 

가족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넘치는 정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허물없는 부모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낳긴 했지만, 자식은 내가 아닌 분리 개체이며 고유한 인격체이기 때문.

 

성인이 된 자녀들을 언제까지고 다스리려 한다면, 반발이 생겨나고 가족 간의 갈등이 증폭된다는 것. 자식들을 품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자식들의 세계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생활이 없어요. 주중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 ‘애가 보고 싶다’고 하시니 주말마다 안 갈 수가 없어요. 아파트 살 때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았는데 그 이자를 내주시고 있거든요. 거역했다가는 언제 지원이 끊길지 모르겠고.”

 

최근 부동산이 폭등하며 경제적인 지원을 무기삼아, 자식을 묶어 놓으려는 부모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는 한 며느리의 이야기다. 만일 이런 노년층이 있다면 남은 시간을 자식이 아닌, 나 자신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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