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나
‘종북’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8.14 11:30
  • 호수 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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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세상 읽기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45) 앞에 따라붙었던 ‘종북’(從北)이란 단어를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됐다. 이 말을 쓴 정치평론가 변희재(40) 미디어워치 대표와 그의 말을 인용한 일부 언론사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고의영)는 이 대표와 그의 남편 심재환(56) 변호사가 “종북·주사파·경기동부연합 등의 표현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변 대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변 대표는 이 대표 부부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현재 이 대표가 이끄는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위헌 정당’이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해산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종북’이 아니라면 이 심판을 바라보는 국민들로선 맥이 풀리는 일이다. 더구나 최근 항소심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아 헌법재판소의 딜레마는 더욱 깊어졌다.
‘종북’이란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북에 동조하고 북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될 때 조승수 의원 등 당내 평등파가 반대파인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비판하면서부터다. 자주파니 평등파니 하는 것은 운동권의 민족해방(NL)계와 민중민주(PL)계가 스스로 붙인 말이고, 자주파의 핵심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이다.
이정희 대표를 ‘종북 세력’이라고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정희 대표는 2010년 8월 라디오방송을 통해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에 대해) “그 문제는 좀더 치밀하게 생각해 나중에 다시 답을 드리겠다”고 했다. 물론 이 대표는 그 후로도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또, 2010년 10월, 북한 3대 세습 공식화 이후 “정치권과 언론은 북의 지도자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세습에 대해)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2010년 북한이 연평도를 기습포격 해 우리 군·민간인 23명이 죽거나 다치고 가옥과 재산상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도 북한의 반인륜적 살인 행동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정부 잘못 때문에 그 지경을 당한 것이라고 북을 두둔하는 식의 발언을 해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이 대표는 “군인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불길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남북 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한다”고 한 것이다. 국가관·역사관·대북관이 전도된 경우를 ‘종북’이라고 하는 게 명예 훼손에 해당 된다면 과연 누구를 ‘종북’이라고 하고, 이 대표는 또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재판부의 판결 중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또 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상당한 평가를 거쳤다”고 해 이 대표의 명예가 훼손 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는 기탁금 3억원만 있으면 4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나설 수 있다. 대통령 후보라고 사상과 정체성 등이 객관적으로 증명됐다는 말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 대표는 2012년 12월 대선 당시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선거에 나왔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가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상대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이 대표는 선거 3일 전 후보 사퇴를 해 국민 혈세인 선거보조금 29억원을 ‘먹튀했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이 대표가 대통령 후보 출신으로서 상당한 평가를 거쳤다고 한 재판부의 판결문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내린 고의용 판사는 지난 6월,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을 방영한 MBC ‘PD수첩’ 제작진이 왜곡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중앙일보와 소속 기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제작진에게 총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던 판사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말로 ‘종북’이라는 표현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국가의 지나친 간섭이자 불합리한 판결이기도 하다. 1.2심에서 배상 판결을 받은 변희재 대표는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대법원의 합리적인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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