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로 중풍 환자를 모시는 세태
승부로 중풍 환자를 모시는 세태
  • 관리자
  • 승인 2007.04.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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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면 열, 백이면 백 노인들은 말한다. 자식들에게나 이웃들에게 폐 안 끼치고 곱게 죽고 싶다는 말씀이다. 사실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것은 견딜 수 있다. 정말 무섭고 괴로운 것은 치매나 중풍 같은 질환으로 자식이나 이웃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아무런 인식도 못하는 상태로 벽에 X칠을 하며 사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얼마 전 한 골프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 한 팀의 플레이가 유난히 느려 뒤의 팀들이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체 누가 앞에서 게임을 하기에 그렇게 게임이 지연되는지 알아보니 어떤 치매노인의 아들 4형제가 내기 골프를 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골프에서 진 사람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공을 친 나머지 매 홀마다 뒤 팀이 기다리는 촌극이 연출됐다.


내기 골프를 칠 정도라고 하면 골프 실력이 웬만한 사람들일 터이다. 웬만한 실력이 되려면 골프장에 돈깨나 뿌렸다는 얘기고, 그렇게 본다면 이 아들 4형제는 웬만큼 넉넉하게 사는 편임을 알 수 있다. 넉넉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치매 아버지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이 현실을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자식들을 잘못 가르친 탓이니 노년세대가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려야 할 판이다.


그래서 노년세대가 모이면 살아서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말자고 말하기도 한다. 돈을 물려주고 따돌림 당했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동방예의지국이 어쩌다 이렇게 삭막하게 됐는가. 자식세대와 이런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대가 없는 소모일 뿐이다.


그러던 참에 국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마련되었다. 장기요양보험법과 기초노령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니 나이 들어가면서 갖는 큰 걱정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장기요양보험법은 치매와 중풍 같은 질환으로 고생하는 노년세대를 쉽게 말하면 국가가 책임지는 법이다. 당장 내년 7월부터 전체 비용의 20%만 지불하면 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었으나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한다.


사회 도처에서 부모를 안 모시려고 하는 문제로 빚어지는 사회적 기회비용의 손실이 적지 않다. 특히 치매와 중풍질환자를 모셔야 하는 경우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가정불화로 인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내다보는 시대에 사회 시스템으로나 국민 정서적으로 이제까지 우리가 그만큼 낙후한 실정이었다. 기왕에 제도를 마련하고 법을 제정했으니 그 효율을 높이도록 노년세대도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정부나 기관은 운용의 묘를 살리기를 바란다. 제도적으로는 어쨌든 마음 편히 늙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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