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감동하면‘다이돌핀’나와… 여행은 고종명 하는 방법”
“여행하며 감동하면‘다이돌핀’나와… 여행은 고종명 하는 방법”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10.06 09:40
  • 호수 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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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활기찬 노년 보내는 81세 조상제 어르신

지하철 타고 200여군데 걸어서 여행… 산‧섬 여행기 등 여행서적 출간도
노인의 시간은‘금쪽’, 즐겁게 보냈으면… 여행하면 근심‧스트레스 사라져

▲ 조상제 어르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거쳐 태종으로 등극하자 함흥으로 내려가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등극을 부정했다. 그 후 태조는 신하들의 간곡한 청으로 함흥에서 돌아오게 되고 태종은 현재 중랑천 하류에서 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하고 화살이 땅에 꽂혔는데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곳이라 하여 ‘살꽂이’ 혹은 ‘살곶이’라 불렀다. 이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살곶이다리’에 얽힌 이야기다.
9월 어느 날 본지 앞으로 짧은 여행기 몇 편이 도착했다. ‘구석구석 지하철 여행’이라는 제목을 단 이 글에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여행정보와 ‘살곶이다리’처럼 여행지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노인을 위해서 활용되길 바란다’는 쪽지와 함께 이 글을 보낸 사람은 81세의 조상제 어르신이다.
조 어르신은 부산대 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상업(실과)을 가르치는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해 동양중학교, 동양공업고등학교에서 총 16년간 교장을 역임하고 1998년 65세에 정년퇴직했다.
지하철을 타고 200여 곳이 넘는 명소를 다녀왔다는 조 어르신을 만나 여행을 하게 된 동기와 여행 뒷얘기를 들어봤다. 언뜻 왜소해 보이는 풍채인가 싶었는데 허리가 곧고 돋보기 너머로 눈빛이 맑다. 계단을 오를 때 힘을 덜 들이기 위해 꼭 손잡이를 잡고 오르는 것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얻은 노하우다.

-지하철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여행 다니는 것을 원래 좋아했어요. 그런데 5~6년 전에 과천시에서 운영하는 실버기자 일을 하면서 여행기를 올렸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지요. 여기저기 놀러 다닐 만한 곳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었는데, 어떤 분이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안내서로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책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 지하철을 이용해서 내가 안 가본 곳에 가보자’ 싶어서 한 1년 동안 마음먹고 200여 군데 돌아다녔지요.”

-왜 지하철 여행인가.
“주위에 보면 할 일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아요. 젊을 적에 힘들게 일을 했으니 노년에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지내면 좋겠지만 딱히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고 여유가 없다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런데 노인들은 지하철로 여행을 다니면 돈도 안 들고 좋잖아요.”

-실제로 지하철 여행을 해보니 어떤가.
“대체로 공원이나 왕릉, 박물관, 전시관이 많고 잘 되어 있어요. 공원이나 왕릉이라고 하면 뭐 볼 것이 있겠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능도 다 같은 능이 아니에요. 태조와 고종의 능이 다르고 생태공원, 역사공원이 다르죠. 비슷비슷해 보여도 그곳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의미를 새기면서 거닐어야 그곳에 간 보람이 있겠더라고요. 어르신들이 미리 알고 가면 가서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선유도 공원에 가봤는데 공원 조성을 참 잘해놨어요. 건너가는 다리도 예쁘고 편의시설도 있어 노인들이 물(한강)과 함께 경관을 즐기기에 편안했어요.”

-불편한 점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
“지하철로 다니면 걷는 시간이 많아서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여행지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입장료도 무료이거나 저렴한 곳이 많아서 불편함보다는 만족감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사람은 공원에 가도 ‘이게 무슨 재미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저 나무나 풀로만 보는 거지요. 지하철 여행은 아니지만 언젠가 친구와 티베트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점심을 먹는데 친구가 주방에 다녀오더니 주방이 더럽다면서 점심을 안 먹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여행은 이미 지옥이지요. 어떤 곳에 가든 여행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공원이건 지하철이건 겉은 참 잘 꾸며 놓았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여전히 고함지르고 누워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공원에서 술 먹고 취해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지요.”

-이미 여행 관련 책을 여러 권 낸 것으로 안다.
“교직에 있을 때 방학 덕분에 다른 직장인보다 쉬는 날이 많았어요. 특히 수업이 없는 일요일마다 산에 갔지요. 전국의 산 230여 군데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산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이 산이 저 산 같고, 이 절이 저 절 같고 통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 퇴직을 한 뒤에는 산에 못 갈 수도 있는데 그때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대학노트에 그 산에 가는 방법, 지역에 얽힌 이야기, 이용정보 등을 적어 놓았어요. 여행노트가 열 권 이상이 되더군요. 마침 같은 학교에 소설가 한 분이 교사로 계셨는데 서랍에 넣어두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책을 내라 권해서 낸 책이 ‘길 두고 뫼로 가기’입니다.”

책 한 권을 내고 나니 산행기 2, 3, 4권이 저절로 나오더란다. 그렇게 네 권을 펴낸 뒤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이번엔 해외여행을 다뤄보면 어떨까’ ‘우리나라에 섬이 수천 개가 있는데…’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고, 결국 ‘지구촌 한 쪽 마을’ ‘파도 넘어 섬 있었네’란 책을 연이어 발간하게 됐다. 그렇다고 그가 책으로 돈을 벌어볼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책을 내면서 인세에 대한 계약은 아예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저 여행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지하철 여행 말고도 여행을 무척 많이 다녔다. 여행이 그렇게 좋은가.
“여행을 좋아해서 다녔다기보다 다니다 보니 여행이 더욱 좋아졌다는 게 맞을 거예요. 여행을 하면 근심, 걱정,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그건 멀리가나 가까이가나, 국내에 가나 외국에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노인에게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즐겁게 지내면 건강해지고, 노인이 건강하면 나라의 살림살이에도 보탬이 된다고 봐요. 노인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기분이 좋으면 질병과는 멀어질 것이니까요. 그러니 여행만 한 것이 있겠어요? 하루를 멀뚱히 보내는 분이 있다면 아침밥을 먹고 운동화를 신고 나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누구와 같이 다니나.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보니 두 부류더군요. 어떤 사람은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해서 혼자 떠나고 여행지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여럿이 같이 가요. 저는 여럿이 같이 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혼자 경치를 보는 것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상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대개는 아내와 함께 떠나거나 동년배 친구들과 같이 다닙니다.”

-여행을 잘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사물을 보면서 감동을 하면 엔돌핀의 4000배에 달하는 다이돌핀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기에 나무가 있네, 하고 마는 것보다 ‘참 아릅답다’고 마음 깊이 느끼는 것이 진짜 여행입니다. 멋진 곳에 좋은 사람들과 같이 가서 보고 즐기고 감동한다면 노인들도 젊어지고 싱싱해질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또 하나는 여행을 느리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인데 항상 느리게 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식을 먹는 것이고 두 번째가 여행을 하는 것이에요. 여행을 가는데 왜 KTX를 타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부산을 간다고 해봅시다. 여행은 부산에서부터 하는 게 아니라 부산에 가려고 기차를 탔을 때부터입니다. 느린 기차표를 예매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간식도 먹으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가기를 추천합니다. 시골로 여행을 가면 버스도 제때 안 와요. 그러면 ‘버스가 왜 안 오나, 왜 안 오나’ 하지 말고 버스가 올 때까지 바닥에 앉아 친구하고 이야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도 사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보면 수준 낮은 여행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게 참 여행인 것 같아요.”

-느리게 여행하면 좋은 점은.
“20년 전쯤 전남 장흥에 친구와 놀러 갔을 때의 일이에요. 천천히 놀다가 보니 해가 저물어 한 농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죠. 문제는 난방이 되는 방이 하나뿐이라 집주인인 농부와 한 방에서 같이 자게 됐지요. 그런데 그 농부가 이야기를 얼마나 재밌게 하던지 밤이 새는 줄 몰랐어요. 당시 농촌에는 장가들기가 어려워 농촌 총각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종종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광주에 취직했다고 소문을 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광주에 방을 얻어놓고 살면서 월말이 되면 부모에게 돈을 보냅니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들이 월급 보내왔다며 잔치도 하고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나 사돈 될 사람도 다 깜박 속아 혼사가 이루어지는 거죠. 혼사를 치르면 도시에 나갔던 신랑은 다시 농부로 되돌아오고요. 지금이야 파혼당할 일이겠지만 이야기가 맛깔나서 재미있으면서도 농촌의 실정이 참 어렵구나 싶었지요. 천천히 놀지 않았으면 듣지 못했을 이야기에요.(웃음)

-여행을 가면 괜히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제 친구 중에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날 ‘어디 좀 가자’하면 그때서야 ‘남는 게 시간인데, 그러지 뭐’ 그래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는 좀 안타깝더라고요. ‘남는 게 시간’이 아니라 ‘금쪽 같이 아껴 써야 하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꼭 여행을 하라는 건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여행을 갔다면 절대 근심을 달고 가지 마세요. 저는 여행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 시간은 정지한다! 우리 집 시계는 동여매고 왔으니 집에 가서 다시 풀겠다!’라고요.(웃음)”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 할 생각인가.
“지하철 여행처럼 작심하고 다니진 않을 거예요. 꼭 좋은 곳이 아니라도 다리가 허락하는 한 국내건 국외건 다닐 예정입니다. 제 소원이 고종명(考終命)이에요. 제 명대로 살다 가되 건강하고 편안히 죽는 거지요. 저에게 여행은 고종명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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