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록커 한대수
늙은 록커 한대수
  • 이호선 서울벤처대학원 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14.10.17 11:07
  • 호수 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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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을 아시나요?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연희전문신학대 초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한영교. 연세대학교 신학관 도서관 명패에 아직도 이름이 적혀있는 이 사람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람, 전쟁 끝에 끼니도 잇기 어렵던 시절인 1955년에 미국 코넬대학으로 핵물리학을 공부하러 갔다 홀연히 실종되어 결국 FBI에 의해 발견된 한창석.
한창석은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에드워드 텔러 박사의 수제자였고, 실종되었을 당시 수소폭탄 제조기술을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 CIA가 제거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수재 중의 수재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사람 박정자.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맏딸이자 피아니스트로 살다 한창석과 결혼했던 미모의 여인.
20세기를 통과하며 우리나라 역사에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이 세 사람은 이제는 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보조출연자들이 되었다. 연희전문신학대 초대학장은 그의 할아버지로, 핵물리학자 한창석은 그의 아버지로, 피아니스트 박정수는 그의 어머니로 존재한다. 바로 포크록커 한대수이다.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나 가수이자 작사가, 작곡가이며 편곡가이고 사진작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라디오 DJ, 방송인, 그리고 영화배우.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으나 그에게 붙는 첫 이름은 늘 ‘한국 모던 록의 창시자’ ‘한국 포크 록의 대가’ 이다. 명실상부 그는 ‘전설의 록커’이다.
전설의 록커도 늙는다. 한대수는 요즘 칠순을 바라보며 백발이 귀를 덮고, 수염마다 희다. 찡그려야 생겼던 주름은 가만히 있어도 보이고 배의 크기만 보면 출산이 임박한 산부같다. 요즘 그는 그 배로 알콜로 고통받는 아내와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딸을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의 아내를 욕하고 누군가는 딸에 대한 격한 사랑을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늙은 남편 한대수는 아내에게 그 흔한 욕 한마디 하지 않으며, 늙은 아버지 한대수는 단 한번도 힘들다며 철부지 딸을 밀어내지 않는다.
누군가 록은 정신이고 문화이고 태도이며 저항이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록의 유일한 경쟁자는 유일신 종교와 파시즘이라 했다. 록의 오만함 속에서 한대수를 바라보라. 그러면 놀랍게도 그의 록음악에서는 오만함이나 독선이 가득한 근본주의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음악 속에 서면 차디찬 기타줄에서 뜨거운 온도가 느껴지고 거친 음색에서는 돌봄이 들린다. 굳은 살 박힌 주름진 손으로 중독으로 신음하는 아내를 끌어안고, 쇳소리 나는 성대로 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 늙은 로커의 돌봄의 자리에 들어서며 나는 그 안에서 예수를 보고 부처를 본다. 약하디 약한 두 영혼을 끌어안은 채 세상을 향해 지금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늙은이 한대수가 부르는 이 노래의 비트는 여전히 빠르다. 록커 한대수의 심장의 박동은 한 번도 느려진 적이 없다. 그는 남은 삶으로 더 강하게 끌어안고, 남은 열정으로 더 뜨겁게 사랑하며, 남은 소리로 더 크게 세상을 울리니, 한대수 그의 노래가 곧 그고 그의 삶이 곧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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