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사랑을 더 부어넣을 수는 있어요”
“환자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사랑을 더 부어넣을 수는 있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11.21 11:38
  • 호수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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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활동하는 이문희 대주교

이효상 전 국회의장 아들… 6년 전 식도암 수술 직후 호스피스 교육 받아

“호스피스 봉사자는 환자와 그 가족과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는 이문희(79) 대주교의 말이다. 천주교 고위 성직자 가운데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이는 드물다. 이 대주교는 호스피스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말기 환자는 혼자서 고통을 참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나누어 갈 수는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고통을 없앨 수는 없어도 사랑을 더 부어넣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전과 같은 모양으로 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임종자도 달라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대주교는 이어 “임종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주위의 사람들과 모두 사랑의 관계를 잇지 못하고 괴로워할 수가 있어요. 혼자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인 것이고, 임종자의 벗이 되어주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고 큰 사랑의 봉사라 할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 대주교는 2008년 대구가톨릭병원에서 매주 1회씩 10주간의 호스피스 교육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선배 신부(박창신 몬시뇰)를 돌봐주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세살 위지만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낸 분이라 마지막엔 거의 매일 병실을 방문하다시피 했어요. 막상 임종은 못했지요. 도착했을 때는 기계의 그래프가 한 일(-)자로 죽 이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몸을 쓰다듬자 순간 그래프가 출렁했어요.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대주교가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2008년 1월, 식도암 수술을 받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주교는 식도에 생긴 종양제거수술을 한 이후 40일 동안 물은커녕 침도 삼키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이때 떠올린 것은 화형과 열탕으로 숨진 일본의 순교자들이었다. 하나는 교토의 개울가에서 하시모토 타효오에가 임신한 처와 다섯 아이를 데리고 화형을 당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찌보리 바오로가 세 아들과 온천 열탕에서 죽임을 당한 일이었다.
이 대주교는 그들의 순교에 대해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는 답으로밖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나도 그렇게 참을 수가 있고 또 그렇게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마침 예수님 부활을 앞둔 사순절 기간과 겹친 투병 과정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이 대주교는 “특히 예수님의 계명인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주교는 2008년 펴낸 수상집 ‘저녁노을에 햇빛이Ⅰ’에서 “고통도 사랑이 주는 것이다. 고통을 참으로 알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실제로 나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와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있을 때와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내 태도가 같지 않았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이 대주교는 이 책에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 “좋은 구경을 하러 좋은 곳에 가는 사람 보고 헤어졌다고 슬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조금 더 있으면 볼 수 있다는 것만 알면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썼다.
이 대주교는 죽음 문턱까지 가본 당시의 경험이 봉사를 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사제와 주교로서 평생을 살았지만 저 스스로 죽음 앞에까지 다녀오니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전했는가, 머리만으로 사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구체적인 사람에게 구제척인 사랑을 전할 방법을 찾다가 호스피스 봉사를 택한 겁니다. 아무래도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제가 돌봐주면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대주교의 호스피스 봉사활동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봉사자들은 한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이 사람이 사는 참뜻이라는 것을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 가운데 살도록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문희 대주교는 경북대 정치학과를 나온 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는 정치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에서 천주교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부친은 이효상(1906~1989) 전 국회의장이다.
프랑스 리옹신학대와 파리 가톨릭대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1965년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 1972년 주교가 됐다. 1986~2007년 대구대교구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시집 ‘일기’ ‘아득한 여로’와 산문집 ‘저녁노을에 햇빛이’ Ⅰ·Ⅱ(대건인쇄출판사) 등이 있다.
현재 경주의 순교자 성지인 진목정의 작은 집과 대구를 오가며 비교적 건강히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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