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늙을수록 부부 사랑 소중
[활기찬 노년생활] 늙을수록 부부 사랑 소중
  • 박영선
  • 승인 2007.05.04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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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웨딩은 즐겁다”

40~50주년 결혼기념 행사 급증
마음 밝아지고 회춘하는 기분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리마인드 웨딩스튜디오. 라일락, 철쭉꽃이 활짝 핀 스튜디오의 정원에서 소모(73) 할아버지와 조모(71) 할머니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웨딩촬영이 진행 중이다.

 

낭창낭창한 젊은 신부와는 달리 허리엔 군살이, 얼굴에는 주름이 들어찼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신부의 수줍음이 묻어났다. 신랑인 소 할아버지 역시 어깨와 등이 굽었고, 턱시도로 가려진 옷 사이로 뱃살이 드럼통처럼 솟아있지만, 기상만큼은 20대 못지않다.

 

“신랑님, 신부님 볼에 살짝 키스해 주세요.”

 

사진사의 주문에 가로로 손을 저으며 남우세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소 할아버지. 그러나 자식들이 계속 요청을 하자, 눈을 질끈 감고 초로의 아내에게 다가가 키스를 한다.

 

“신부님, 신랑님의 옷매무새 한번 매만져 주세요.”

 

사진사의 주문에 조 할머니는 50년 익은 능숙한 솜씨로 소 할아버지의 셔츠와 넥타이를 바로 잡는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또 다른 리마인드 웨딩스튜디오. 족두리에 연지, 곤지를 찍은 신부를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이 번쩍 들쳐 업고 성큼성큼 한 바퀴를 돈다.

 

빛깔 고운 옷차림만 봐서는 젊은 커플의 웨딩촬영 행사다. 하지만 가까이서 얼굴 모습을 보면 신랑, 신부의 노안을 발견한다.

 

커버 메이크업으로 수정을 했지만, 빗겨간 세월을 전부 감출 수는 없어 조명등 아래 노부부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금혼식을 치르는 부부라고 보기엔 너무도 곱다.

 

“신랑 기운이 장사네. 늦둥이 세 명은 문제없겠어.”

 

친구들을 대표해 도우미로 따라나선 신랑 친구가 농담을 던지자, 신랑 신모 할아버지가 “에끼, 이 친구야”하고 대꾸를 한다. 하지만 싫지 않은 분위기다.

 

4~5월을 결혼의 계절로 꼽는데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신부 중에는 노부부들도 상당수 끼어 있다. 4~5월은 리마인드 웨딩 업체들에게 성수기로 금혼식이나 40, 50주년 결혼기념 행사를 치르려는 노부부들의 문의나 예약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처음 자식들로부터 제안을 들었을 때는 대부분 펄쩍 뛰지만, 행사를 치러본 노부부들은 “정말 좋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젊었을 때는 여유가 없어 어떻게 결혼식이 치러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리마인드 웨딩에서는 여유도 생기고 그동안 함께 해로해준 배우자에게 감사의 편지도 읽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어 더욱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기 전에 야외촬영이다, 동영상이다 해서 사진을 한 가득 남기잖아요. 우린 그런 거 해보지 못했어요. 결혼식장에서 겨우 사진 한 장 나눠 가졌을 뿐이지요.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결혼식을 할 때 ‘세월이 좋구나’ 내심 부럽기도 했어요.”

 

얼마 전 리마인드 웨딩을 경험한 최모(67) 할머니. 늦었지만 젊었을 때의 기분을 되살려 웨딩촬영을 하고 나니 소원성취를 한 느낌이라며 활짝 웃는다. 대형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볼 때마다 마음이 밝아지고 회춘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성형이나 레이저 시술을 위한 ‘계’가 유행하는 것처럼 모 지역에서는 리마인드 웨딩을 위한 계를 결성한 노인들도 있다는 후문.

 

리마인드 웨딩스튜디오 ‘예감’의 조완주 사장은 “친척들 사이에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결혼사진을 다시 예쁘게 찍었다고 소문이 나면 같은 연배의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이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을 기해 리마인드 웨딩을 준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고 전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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