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맑은 자연속에서 예쁜 새 보면 행복… 노인에게 특히 탐조가 좋아요”
“공기 맑은 자연속에서 예쁜 새 보면 행복… 노인에게 특히 탐조가 좋아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2.06 11:34
  • 호수 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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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극복하고 다시 새 찾아다니는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2006년 뇌졸중, 오른쪽 마비 진단… 살아서 다시 새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이겨내
‘강남 갔던 제비’는 실제론 태국 방콕 갔다온 것… 어릴적 ‘후투티’에 마음 뺏겨

사진작가 김중만의 청담동 스튜디오엔 카나리아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레게머리를 하고 다니는 등 첨단 유행의 아이콘인 그가 일종의 인테리어 소품 삼아 키우는 새이다. 한반도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크낙새의 마지막 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한 ‘새 박사’ 윤무부(74) 경희대 명예교수. 그의 집에도 박제된 새 한 마리 쯤 있을 것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서울 휘경동 대단지 아파트에 있는 그의 집은 새 대신 필름스크랩북, 녹화테이프 등 기록물과 망원경·카메라·가방 등 촬영장비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윤 명예교수에게 가장 묻고 싶은 건 ‘과연 새들이 조류독감을 옮기는가’였다. 윤 명예교수는 “현재까지 야생조류가 조류독감을 옮긴다는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잘라말했다. 윤 명예교수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집안에 새 한 마리쯤은 있을 줄 알았다.
“깃털, 먼지 날리고 배설물도 뿌려 지저분해요. 실내에선 키우지 않는 게 위생상 좋아요.”

-새들이 조류독감(AI)을 옮긴다고 한다.
“집에서 키우는 오리, 닭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야생오리가 사람이나 짐승에게 (조류독감을) 옮겼다는 연구나 보고서가 없어요. 우리나라에 왔다가는 모든 철새가 중국 상해 양자강 하류를 거칩니다. 근데 거기서 아직 조류독감 얘기를 안 해요.”

-AI라고 마구잡이 살 처분도 문제다.
“금강하구에 조류독감이 발생했다고 약을 쳐대니까 개구리·매미·곤충 등 뭐든지 다 죽어요. 일본은 우리보다 과학이 발달했으면서도 우리처럼 똑똑한 척하고 그러지 않아요. 희귀한 철새가 날아오면 그 동네는 그걸 선전해요. 사람들이 모이면 지역의 슈퍼, 음식점, 여관도 잘 되고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있어요.”

-요즘 어딜 가야 새들을 볼 수 있나.
“1월이 탐조(探鳥) 피크에요. 두루미를 보려면 강원도 철원에 가고, 오리 종류를 보려면 한강습지에 가세요. 강화도, 부산의 낙동강하구, 금강하구, 서산 천수만도 좋고요. 경기도 광릉에도 매일 100여마리가 날아와요.”

-요즘도 새를 보러 나가는가.
“그럼요, 오늘도 ‘백세시대’ 인터뷰가 없었더라면 벌써 산에 가 있었을 겁니다. 뇌졸중에서 회복된 것도 새를 보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에요.”

윤무부 명예교수는 2006년 12월,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새를 관찰하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뇌졸중’과 ‘오른쪽 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꼭 살아서 새를 더 연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2년여 투병생활에 이어 재활운동을 꾸준히 한 덕에 요즘은 오른손·오른발을 빼고는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

-공기 좋은 자연만 찾아다녔는데….
“건강에 대해 자만심이 컸어요. 탐조라는 게 새의 움직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끼니를 건너뛰었다가 폭식을 하기 일쑤였어요. 그런 불규칙한 섭생으로 몸이 망가졌던 것 같아요.”

-어떻게 회복했나.
“처음엔 말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지요. 먼저 폭식 습관을 버리고 새가 모이를 먹듯 소식을 했어요. 왼손으로 이름조차 쓰지 못해 ‘가나다라’를 새로 익혔어요. 숟가락질도 1년 걸렸어요. 2년여 동안 머릿속으로 서울부터 부산까지 왕복 운전을 반복한 결과 이제는 왼발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해 어디든지 갑니다.”

-새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가.
“노래 소리가 아름답고 생김새가 예쁘잖아요. 빨강부터 노랑까지 얼마나 다양해요. 새를 보고 있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노인에게도 탐조가 좋겠다.
“선진국은 ‘버드워처’(BirdWatcher·탐조객)라고 탐조 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많아요. 공기 맑은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새를 보면 행복하잖아요. 미국·일본 같은 나라에는 탐조 모임도 많고요. 영국 왕실에는 새 보는 그룹도 있을 정도에요. 새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는 프랑스이고요.”

-탐조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대학 때 경기도 포천에서 급류에 휩쓸려 워커힐까지 떠내려 와 죽다 살았던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가방에 나침반·망원경·카메라 등을 넣고 다니니까 간첩으로 오인 받아 군에 여러 번 잡혀가고 그랬어요. 좋은 점도 있어요, 며칠 동안 산에 있다 내려와 버스 타면 쉽게 자리를 잡아요. 냄새 난다고 다 피하니까요.”

-탐조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우선 1만원짜리 조감도하고 쌍안경, 노트 한권, 비디오 등 카메라 장비를 갖춰야 해요. 1km에 있는 새를 보려면 망원경과 삼각대도 필요하고요. 장비 못지않게 옷도 중요해요. 화려한 옷은 피하고 낙엽색깔이 좋아요. 장화를 꼭 신어야 해요. 겨울에는 따듯한 물이나 요깃 거리를 준비해야 하고요.”

-우리나라 새는 몇 종류인가.
“360종이에요. 길 잃은 새까지 포함하면 400종이 넘고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새는.
“그런 거 없어요. 왜냐하면 시베리아와 육지로 연결돼 있어서 그래요. 일본에는 섬에만 사는 특산종이 있어요. 오키나와뜸부기 같은….”

-속담에 새가 많이 등장한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지요. 산에 (시신을)묻으러 가도 까마귀는 따라와요. 음식 냄새를 맡아서지요. 까마귀는 40~50km 밖에 있는 동물의 체취를 맡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요. 설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합니다만 그건 둥지를 지키려는 방어행위에요. 까치나 까마귀는 머리가 좋아 동네 사람들을 다 기억해요. 설날에 동네를 찾아온 낯선 사람이 둥지를 어떻게 할까봐 우는 겁니다.”

-새들의 장거리 이동은 놀랍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데 그때 강남이 어딘 줄 아세요. 서울 강남역이 아니에요. 태국의 방콕이지요. 서울서 방콕까지 3740여km 떨어진 거리를 어떻게 가는가. 서해에는 섬도 없잖아요. 애들이 태안반도에서 출발해 센카쿠에서 쉬었다가 가는 겁니다. 새들은 맑은 날, 낮에 이동해요. 밤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새들의 시력은 사람보다 300배, 청력은 200배, 후각은 120~150배가 좋아요.”

-새를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새는 환경의 바로미터에요. 새가 못살면 인간도 살 수 없어요. 동물 가운데 새가 가장 예민해요. 물이 나쁘면 절대 안 먹어요. 참새가 겨울에 해충을 엄청 잡아먹어요, 중국의 모택동이 참새가 곡식을 훔쳐 먹는다고 다 잡아버리라고 했어요. 그해 벌레로 완전 흉작이 됐어요.”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1941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생물학 학사와 이학석사 학위를, 한국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에서 1979~2006년 생물학을 가르쳤다. 한국동물학회와 생태학회 이사,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부자(父子)가 ‘새 박사’이다. 아들도 경희대 생물학과를 나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후투티

-어떻게 새를 연구하게 됐나.
“내 명함에 있는 새가 ‘후투티’에요. 우리나라 민가 근처 산에 흔했던 여름철새이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머리에 왕관을 쓴 듯한 독특한 생김새의 후투티를 처음 보고는 관심 갖고 따라다녔지요. 후투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소나무나 밤나무의 썩은 구멍을 옮겨 다니며 살아요.”

-모든 새의 특징을 다 파악하고 있나보다.
“지구상에 사는 8626종의 새를 거의 다 알지요. 대신 다른 건 몰라요. 그래서 어떤 이는 나보고 ‘새대가리’라고 해요.”

-새를 연구해 생활이 되나.
“며칠 전에도 CF 찍어 3000만원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새 박사’라고 알려져 수입이 괜찮아요. 문제는 후배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겁니다. 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워낙 이름이 알려져 저만 찾아요.”

-업적이라면.
“연구논문 많이 썼고, 34년 동안 쫓겨나지 않고 학생들 가르친 것들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새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만든 것도 들 수 있겠지요. 이렇게 언론 인터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학술적으로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든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가끔 흑산도에서 아프리카, 남미에서 날아온 새들을 발견했다며 연구가치가 있다고 신문에 나지만 그거 학술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발견한 건 길 잃은 철새에요. 만약 기후변화에 적응해 몇 년 동안 번식했다면 학술적 가치가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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