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택배업체 노인들, ‘쥐꼬리’ 수입에 한숨
지하철 택배업체 노인들, ‘쥐꼬리’ 수입에 한숨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3.13 10:36
  • 호수 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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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2만원 선 벌어… 노동시간 대비 낮은 수입

최 모(72) 어르신은 얼마 전 지하철 노인택배 직원으로 취직했다. 두 다리만 있으면 매달 일정한 수입이 생긴다는 업체 측 설명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종일 빠듯하게 움직이면 최대 5건의 배달을 마칠 수 있다. 그런데 수수료와 점심값을 제외하고 나면 2만원 가량만이 손에 쥐어진다. 여기에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배송지라도 걸리는 날엔 그마저도 못 만진다. 심한 경우는 하루 일당이 1만원이 채 안 되는 때도 있다.

▲ 지하철 택배업체 일을 하는 노인들이 노동력에 비해 낮은 수입을 얻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일부 업체 수수료 40%까지 떼… 보증금 받는 업체도
자주적 업무 환경 조성 필요… 신체적 한계도 인지해야

그는 “골다공증이 있어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면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특히 요즘처럼 추운 날씨엔 더욱 그렇다”면서 “그래도 우리 업체는 배송비 중 수수료를 30% 떼어 양호한 편이다. 심한 곳은 40%까지 토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최 어르신은 ‘송장’(送狀)이 붙은 쌀 포대를 짊어진다.
심 모(74) 어르신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지하철 노인택배 2년차이다. 몸에 익을 만도 하지만 퇴근길의 무거운 몸은 여전히 힘에 부친다. 이 일을 시작한 뒤론 명절에 성묘도 못 갔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하루 평균 1만5000~2만원 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장의 생활비 걱정에 심 어르신은 매일 일터를 향한다.
고령자들의 노후 일자리로 각광받고 있는 지하철 노인택배가 실상은 노동력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하철 노인택배, 이른바 ‘실버 퀵’은 2005년 처음 도입됐다.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지하철 무료탑승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시작됐다. 일반 퀵서비스보다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빠른 배송시간까지 더해져 이를 찾는 수요자들이 점차 늘어갔다. 이후 사업은 활황세를 걸었고, 수많은 업체들이 등장해 노인일자리로서의 입지를 굳히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런 성장의 최선봉에 섰던 일선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종일 일해도 과도한 수수료와 기타 제반비용 탓에 매달 30만원의 수입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모(69)씨는 두 달 전 이 일을 그만뒀다. 소모되는 노동력에 비해 수당이 턱없이 적은 것이 주된 이유다. 보통 배송 한 건당 거리와 물건 중량에 따라 5000원부터 2만원까지 받는데 하루 5건의 배달은 그리 녹록지 않은 과정이다.
그는 “노인택배는 최대 중량이 5kg이다. 젊은이들도 힘들어하는 무게다. 이를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세 시간씩 들고 다니다보면 온 몸의 진이 빠진다. 일을 마친 뒤 수중에 1000원짜리 몇 장밖에 남질 않은 것을 보고 손을 뗐다”고 토로했다.
이 사업은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대부분 대한노인회 산하 지회와 연계돼 있어 지회를 통해 신청자를 지원받는다. 지자체의 배달요원들은 수수료를 20% 수준으로 적게 낸다. 국가에서 매달 10만~15만원씩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시행 중인 지자체 수가 일자리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령자들은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소득이 부족한 사설 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요즘엔 고령자들이 지하철 노인택배 취업을 꺼리는 분위기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업체의 경우는 매달 보증금도 걷는다.
‘실버 퀵’은 3개월차인 이모 어르신(70)은 “업체에 소속되려면 매달 2만원 가량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건강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일을 쉬거나 하는 경우 업체가 가져가던 수수료를 보증금에서 제하기도 한다”면서 “나이가 적지 않아 4대 보험도 가입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당장 먹고살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한 업체 관계자는 “택배 한 건당 책정되는 부가세 10%는 물론 배송의뢰를 접수하는 인력에 대한 인건비, 시설 운영비 등이 들어 수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간혹 어르신들이 교통비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손님에게 말해 해당 금액을 받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염인렬 대한노인회 고양통합취업지원센터장은 “일부 ‘실버 퀵’은 사설 업체들의 ‘횡포’는 대한노인회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며 “사업 운영 과정에 따른 수수료 취득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사항이지만 배송비의 40%나 가져가는 것은 ‘갈취’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르신들이 자주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염인렬 센터장은 “일선 종사자들끼리 조합 등을 조직해 자체적으로 회사를 만들어 수수료를 낮추거나, 기존 택배업체들이 꺼려하는 배달 업무로 사업 영역을 조금씩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에 더해 어르신들도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파악하는 한편 ‘실버 퀵’을 통한 수입 창출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인지하는 과정도 앞선 사례와 같은 피해를 줄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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