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 메르켈 獨 총리 “과거사 반성” 소신 발언에 세계가 열광
방일 메르켈 獨 총리 “과거사 반성” 소신 발언에 세계가 열광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5.03.13 10:59
  • 호수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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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학살에도 독일이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운 과거사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라.”
한 여성의 소신 발언이 세계를 열광시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월 9~10일 이틀간의 짧은 방일 기간 중에 할 말을 다 했다. 국제사회는 열광했고 일본은 늘 그래왔듯이 못 들은 척했다.
메르켈 총리는 신문사 강연과 기자회견, 야당 대표와의 면담 자리에서 전쟁 가해국으로서의 반성을 촉구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 해결과 원전폐기, 남녀차별까지 두루두루 쓴소리를 했다.
방일 첫날인 9일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그는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간 화해의 전제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이어 열린 아사히신문 강연회에서 일본에 “과거사를 직시하라”고 거듭 주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독일의 나치 학살과 그 후의 경험을 전하는 방식으로 과거사 직시와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태도는 전세계로부터 노련하며 철저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독일은 과거와 제대로 마주했다. 전쟁을 치르며 적대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2차 대전 후 화해를 통해 우정의 관계로 발전했다. 양국이 서로 한발씩 양보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10일 오카다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는 성 노예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동아시아의 상황을 생각할 때 한일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일침했다.
메르켈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건도 비켜가지 않았다. 그는 아사히신문 강연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국가에서 일어난 원전사고는 중대한 사건이었다며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산업계 여성 지도자들과의 조찬에서는 일본 사회의 남녀차별 분위기를 거론했다. 그는 여성 총리가 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여성의 능력 발휘에 호의적이지 못한 일본의 성향을 지적했다. 메르켈은 40대 중반에 독일 기독교민주당의 당수가 됐다. 그때 여자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인데 총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남자 아이들이 있을 정도”라는 농담을 던지며 독일의 발전한 남녀평등 사회상을 전달했다.
메르켈의 이같은 행보는 당초 예상을 빗나간 것이다. 메르켈 총리의 방일은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준비 성격이 강한 의례적 행사였다. 때문에 메르켈이 아베 신조 정부를 겨냥해 과거사 청산을 촉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결과는 폭발적이다. 중국 언론은 10일 긴급 온라인 조사를 실시하고 응답자 97%가 지지서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미국 전 하원의원인 에니 팔레오마베가는 지금이 사과할 때라고 아베 총리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내보내는 방식으로 메르켈의 지적을 모른 척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상세히 보도한 곳은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부에 불과했다. 산케이 신문은 “유럽 각국이 한국의 로비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메르켈의 발언이 한국의 로비 때문에 나왔다는 의미의 기사를 실었다. 또 일본은 독일 나치처럼 특정 인종을 박해한 적은 없다며 메르켈 총리가 혼동해 일본과 독일을 동일시했다고 썼다. 산케이신문은 메르켈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습관쯤으로 여겨 내버려두면 그들의 주장이 정사(正史)가 된다. 우리 정부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본의 주장이 나올 때마다 열 번이든 백 번이든 조목조목 반박하며 맞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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