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천상병, 헤세… 시인들의 행복 노래
유치환, 천상병, 헤세… 시인들의 행복 노래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5.03.20 10:47
  • 호수 4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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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유치환 ‘행복’ 중에서)
시인이 행복을 노래한다. 청마(靑馬) 유치환은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읊었다. 무슨 연유에선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할 순간에 주인공은 편지를 쓴다. 비록 그 사랑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을 지라도 행복했노라고 전하고 싶은 거다. 진홍빛 양귀비 꽃처럼 피었다 질지라도 “안녕”이라 말하며 이렇게 맺는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은 모든 것을 덮는다. 행복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다. 어제와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어르신들도 청마가 노래한 행복에 동감을 나타내리라.
천진난만한 심성을 가졌던 천상병 시인은 행복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 생활의 걱정이 없고 / 대학을 다녔으니 / 배움의 부족도 없고 / 시인이니 / 명예욕도 충분하고 / 이쁜 아내니 / 여자 생각도 없고 / 아이가 없으니 /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천상병 ‘행복’ 중에서)
시인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만을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아내에 의존해 사는 남자의 어설픈 자존심도 던지고 자녀가 없음도 슬퍼하지 않는다. 모든 게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다. 세상에서 그보다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게다가 시인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어 현세와 내세에 대한 걱정이 없다.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 이 우주에서 / 가장 강력한 분이 / 나의 빽이시니 /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그래서 천 시인은 다른 작품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읊조렸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써내려간 행복은 더 고상하다.
“행복을 찾아 쫓아다니는 한 / 당신은 아직 행복을 누릴 만큼 /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 비록 모든 사랑스러운 것이 당신의 것이 된다 해도 /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고 / 목표를 정하고 초조하게 있는 동안은 / 당신은 아직 평화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헤르만 헤세 ‘행복’ 중에서)
헤세는 행복은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행복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물질을 모으고, 친구를 만들고 할 일을 찾아낸다. 분명 이런 것들은 행복해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 어떠한 목적도 욕망도 모르고 / 행복이란 말을 부르지 않을 때 / 그때야 비로소 세상만사의 흐름은 /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요 / 당신의 영혼은 안식을 찾을 겁니다.”
모든 희망도 포기하란다. 목적도 욕망도 잊어버리란다. 헤세는 희망과 목적이 행복으로 이끄는 첩경이라는 일반 행복론을 뒤집는다. 이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더 이상 그런 조건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안식이 찾아오고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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