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복지정책 ‘사회보장조정’ 문턱 넘기 어렵다
지자체 복지정책 ‘사회보장조정’ 문턱 넘기 어렵다
  • 한성원 기자
  • 승인 2015.03.27 10:36
  • 호수 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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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와 협의·조정 통해 재정의 낭비 막는 장치

강원 횡성군은 지난해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1인당 최대 150만원상당의 보청기 구입비를 지원키로 했다. 관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의료급여수급자 중 65세 이상 청각장애인 28명이 지원 대상이었다. 이들은 청각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의료급여 34만원을 받아도 돈이 모자라 보청기를 구입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고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업은 전면 백지화됐다.

▲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지자체 차원의 복지정책 발굴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사회보장조정제도의 역할 또한 조명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지자체가 노인들에게 보청기를 지원하기 위해 청력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작년 횡성군 보청기 지원사업 등 절반 넘게 ‘제동’

보건복지부가 “타 지원사업과의 중복 가능성이 높고 명확한 선정기준이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횡성군 관계자는 “지원 금액 부분에서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일부 지원을 받아도 보청기를 살 수 없는 노인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랐는데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복지당국은 물론 지자체 차원의 복지정책 발굴에 대한 필요성도 더욱 요구되고 있다.
이와 함께 효과가 불분명한 선심성 정책과 유사·중복 사업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제도(이하 사회보장조정제도)’의 역할 또한 조명을 받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시행된 사회보장조정제도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에 의거 지자체 등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그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과 운영방안 등에 대해 복지부와 협의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비슷한 정책이 있거나 없어도 되는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이자는 의미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신설·변경 사회보장제도의 협의·조정을 위한 기준과 절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2년간 협의·조정이 진행된 안건은 총 132건(2013년 61건, 2014년 11월말 기준 71건)에 이른다.
협의·조정 안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31건(23.5%)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2013년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안건이 11건으로 빈곤·취약계층(13건), 영유아·아동·청소년(12건) 대상 안건보다 적었지만 2014년에는 20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소득·생계 지원과 돌봄 서비스 제공이 두드러졌다. 이는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취약계층 노인에 대한 돌봄 욕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기초연금 시행 이후에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추가적 수당 지급을 위한 사업 추진 시도가 많았음을 의미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안건 처리 결과를 비교하면 ‘수용’ 비율이 2013년 67.2%에서 2014년 42.3%로 낮아진 것이 눈길을 끈다. 이 같은 결과는 2014년 6월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불수용’ 대신 권고 또는 추가협의를 통해 안건의 내용을 변경·보완하는 방식이 적용된 반면 이후부터는 타당성이 낮은 사회보장제도의 신설이나 변경에 대해서는 ‘불수용’ 원칙을 고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만큼 사회보장조정제도의 문턱을 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사회보장조정제도가 지자체의 다양한 복지정책 추진을 가로막고, 지방자치제의 취지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지 분야뿐만이 아니라 지자체가 불필요한 사업을 추진하려 할 경우 지방의회가 충분히 이를 견제할 수 있으므로 지자체 자체예산 사업에 중앙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자체 복지 담당 실무자들 스스로가 사회보장조정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자체의 경우 담당자들의 순환보직으로 해당 업무를 1~2년 정도 맡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직 변경으로 새로 맡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미흡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협의·조정 과정에서 상위법의 규정과 조례 간의 상충 문제, 기존 제도의 현황과 유사·중복성 검토, 급여 및 대상자 선정 기준의 명료화 등에서 사회보장조정제도가 도움이 됐다는 것.
정홍원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 스스로도 충분히 복지정책을 발굴·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 국고보조금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지자체의 예산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이상 사회보장조정제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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