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몸으로 느끼며 ‘상처’ 치유받는 전시회
작품을 몸으로 느끼며 ‘상처’ 치유받는 전시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3.27 11:37
  • 호수 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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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문화재단 ‘감정발산 프로젝트’, ‘트라우마의 기록’ 전
▲ ‘감정발산 프로젝트’ 전은 작품 체험을 통해 치유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사진은 김동현의 ‘퀴리부인’.

버튼 누르면 경쾌한 음악과 함께 움직이는 ‘물고기 화석’ 등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작품… 어느새 억눌린 감정 해소

몇 해 전 사랑하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박(67)모 씨는 가급적이면 차를 타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국전쟁 당시 포탄에 다리를 잃을 뻔했던 임(78) 모 어르신은 요새도 민방위의 날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통증과 함께 불안감을 느낀다.
박 씨와 임 어르신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있다.
고양미술재단이 이런 트라우마를 주제로 두 개의 전시를 선보인다. 개인의 상처 치유를 다룬 ‘감정발산 프로젝트’와 집단 트라우마의 극복을 다룬 ‘트라우마의 기록’ 전이 그것이다.
먼저 경기 고양시 어울림미술관에서 5월 31일까지 진행되는 ‘감정발산 프로젝트’ 전에는 김동현‧백인교‧장형선‧정문경‧혜순황의 작품 18점이 공개된다.
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김동현의 ‘물고기 화석’은 전시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무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대형 물고기를 표현한 작품은 한 쪽에 빨간 버튼을 마련해 놓았다. 버튼을 누루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나무 뼈대가 살아있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듯 움직인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김동현은 오토마타(나무‧종이‧금속 등으로 만들어진 기계 인형, Automata)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아이처럼 순수하게 작품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전시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며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정문경의 ‘포트’(Fort)는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이 담긴 비밀공간인 ‘아지트’를 떠올리게 한다. 포트는 버려진 상의를 엮어 만든 천막인데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포근한 향기와 함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겹겹이 얽혀 있는 상의들은 빈틈없이 사람들이 뭉쳐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포트 안에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보호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혜순황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사운드 드로잉’(Sound drawing)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를 메모해 벽에 붙이는 것이다. 심리상태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기에 관람객 스스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다. 또 메모 행위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도 있다.

▲ ‘6·25 이전의 가족’(좌)과 ‘6·25 이후의 가족’(우). 전쟁 후 줄어든 가족의 모습은 민족의 아픔을 표현했다.

5월 17일까지 고양시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트라우마의 기록’ 전에서는 김상돈 등 작가 13명의 작품 76점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전쟁, 군사독재 시절 등을 겪으며 한국인의 마음속에 새겨진 집단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 이번 전시는 민족, 재난, 사회 등으로 나눠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임옥상은 ‘6‧25 이전의 가족’과 ‘6‧25 이후의 가족’을 선보인다. 6‧25 이전 환갑사진 속 단란했던 대가족은 전쟁을 겪은 후 반토막이 난다. 전쟁 전‧후 달라진 가족구성원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으로 사라진 가족의 상처를 보여준다.
손기환은 ‘DMZ-마주보기’를 통해서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갈등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DMZ-마주보기’는 6점의 그림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망원경을 들고 양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그 사이에는 북한의 만화 캐릭터 ‘소년장수바우’, 남한의 ‘똘이장군’ 미국의 ‘캡틴아메리카’를 배치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며 분단의 상처를 표현했다.
홍원석은 재난을 소재로 한 집단 트라우마 작품을 공개한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는 재난의 공포를 표현했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자유로의 부서진 도로(‘파주 자유로’)와 길 한복판에 갑자기 생겨난 싱크홀(‘샷’)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고를 연상시킨다.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인이 겪은 트라우마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김윤경숙의 ‘하얀비명’은 세월호 희생자를 의미하는 304개의 전구로 침몰 직후 세월호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구의 깜빡임으로 죽은 자를 기리고 있다. 이혜인은 ‘눈먼그리기’ 시리즈를 통해 서서히 죽어가는 희생자의 모습을 그렸다. 눈코입이 없는 일그러진 표정은 희생자들을 암시한다. 두 작가는 대형재난사고로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국민이 겪었던 절망스러운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관람료는 각각 5000원이며 두 전시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권은 7000원이다. 65세 이상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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