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자를 찾아서] 김경순씨(전북 정읍시 태인면)
[효행자를 찾아서] 김경순씨(전북 정읍시 태인면)
  • 박영선
  • 승인 2007.05.1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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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부모 봉양·독거노인까지 돌보미 역할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따라 효행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설이나 전시대에서 우리 윗세대들이 보여주었던 효심과 달리 요즘은 효에 대한 개념이 바래고 퇴색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깊은 효심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며 사회를 밝게 하는 많은 효자·효부들이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전국의 효자, 효부들을 만나 효행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효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합니다.

시부모님 봉양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궂은일에도 앞장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한 김경순(46)씨. 그가 시집을 온 건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스무살 되던 해였다.

 

서울의 한 봉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1년쯤 연애를 했고, 시부모님에게 인사를 왔을 때야 비로소 시부모님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몸이 불편한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집을 오겠다고 우겼다는 김경순씨.

 

결혼 당시부터 그의 시아버지(85)는 한쪽 다리가 절단되어 주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시어머니(76)도 젊은 시절 중풍에 걸려 하반신 한쪽이 마비 된 상태여서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친정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고, 그렇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26년을 살았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부모님이 말씀도 잘 하시고, 대화하는 데 별 지장이 없어 다행스럽다”며,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 주로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은 시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김경순씨는 1남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이 정신지체 3급이라고 한다. 아들의 장애에 좌절할 만도 하건만, 그는 “말 잘 하고, 잘 알아듣고, 몸이 불편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특히 두 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고, 김씨 내외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시집을 온 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에게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까운 이웃들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장애가 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줄 몰랐단다.

 

이 때문에 그가 지난해 삼성복지재단이 시상하는 ‘제31회 삼성효행대상’을 수상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고 한다.

 

김경순씨가 시집오기 전, 친정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다. 딸의 고생길이 훤히 보이니 부모로서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친정어머니가 예전에는 저를 보기만 하면 속상해하며 많이 우셨어요. 그런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저도 너무 속이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내가 선택한 길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냥 엄마가 잘 도와주면 어떻겠어요. 예쁘게 좀 봐 주세요’ 하고 말했어요.”

 

그 이후 친정어머니는 김씨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항상 밝게 사는 딸을 대견해 하신다고 했다.

 

김씨는 “시집 와서 고생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좋은 분들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속 깊은 며느리다.

 

또 7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마을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마을의 효부이기도 하다.

 

내 부모, 남의 부모 가리지 않고 효도하는 그가 있기에 세상은 더욱 따뜻하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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