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가 사는 집은 몇 평이면 좋을까
노부부가 사는 집은 몇 평이면 좋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4.03 10:44
  • 호수 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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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여동 40평대 아파트에 단둘이 거주하는 60대 부부의 대화.
남편 “지방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갑시다, 이제는 큰집이 필요하지 안찮소?”
아내 “그래도 자식들이 오면 잘 방이 있어야 돼요. 시골엔 죽어도 못 가요.”
이 부부는 일년에 서너 번 찾아오는 자식들을 재우려고 부담스런 주택담보대출이자·관리비등을 내며 빈방을 청소하고 있다. 만약 이 부부가 이 집을 팔아 지방의 20평대 아파트로 줄여 이사한다면 계절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한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60~70대 부부 가운데 이같은 울며 겨자먹기식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한 ‘하우스푸어’가 한둘이 아니다.
집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곳이다. 먹고 쉬고 자는 공간이다. 좁아서도 안 되지만 너무 넓은 것도 경제적·육체적 낭비다. 그렇다면 60대 노부부에게 알맞은 주거공간은 얼마일까. 우리나라 법에서 그걸 정해놓았다. 현행법상 최소 주거면적은 26㎡. 8평이 조금 넘는다. 말 그대로 최소이다. 대부분은 이보다는 넓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친지 중 한 사람이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했다. 말이 13평이지 계단, 주차장 등 공용면적을 제외하면 실 평수는 7~8평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살기에 결코 좁지 않았다고 한다. 방 2개에 거실, 화장실, 부엌, 베란다 등 다 갖췄다. 거실엔 자전거와 벤치프레스까지 둘 정도였다.
최근 일본에서 4년간 스테디셀러로 읽히는 책이 ‘작은집을 권하다’이다. 도쿄대 이공계를 졸업하고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 엘리트 청년 다카무라 도모야(33)가 쓴 책이다. 그는 도쿄 도심에서 오토바이로 반나절쯤 걸리는 잡목림 속에 손바닥만한 임야를 사서 9.9㎡(약 3평)의 집을 손수 지었다. 비용은 100만엔.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채 안 들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담은 책이다. 그의 집은 부엌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거실 위쪽에 다락처럼 만들어놓은 침실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잠들 수 있다. 그는 이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책을 읽고 일본 곳곳에서 자기처럼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과 블로그로 소통한다.
일본 건축법은 10㎡가 넘는 건물부터 건축물로 규정한다. 법적으론 건축물이 아니니까 번거로운 규제에도 걸릴 일이 없다. 다카무라는 “집은 살자고 있는 것, 왜 거기다 인생을 바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집이란 게 원래 사람이 행복하게 살자고 있는 건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사람들은 집에 매여 인생을 바친다. 젊어선 월세 내느라, 조금 나이 들면 모기지 갚느라, 더 나이 들면 집 넓히느라 그리고 그 집을 갖가지 물건으로 채워 가느라. 그 중에 쓸데없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는 이사 한 번 해보면 다들 알 것이다.”
고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토지 국유화로 국민 86%에게 공공주택을 공급했다. 국가가 나서서 강압적인 힘으로 살인적인 주택문제를 해결해준 것이다. 그 나라엔 전세난 따위는 없으며 주거 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행복하다. 불행히도 우리는 리콴유 같은 힘 있고 현명한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에 유행처럼 번지는 역모기지 덕분에 상당수가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장만해야 한다. 직장생활 20~30년을 한다 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노인들마저 가세해 집값을 올릴 이유가 없다. 노부부가 쉴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아도 된다. 서울 같은 도심이어야할 이유도 없다. 그 나이라면 도시의 편리함을 충분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노부부들이여, 젊은이들에게 도시를 내주고 도심에서 멀리 멀리 나가 다카무라처럼 작은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 대학병원의 품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노욕을 버리고 자연과 벗하며 순리대로 산다면 젊은이들도 집구하기가 훨씬 수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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