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이라 불리는 사람들
‘신중년’이라 불리는 사람들
  • 이호선
  • 승인 2015.04.10 10:45
  • 호수 4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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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을년, 강도야, 경운기, 홍한심, 김치국, 송아지, 하쌍연, 서동개, 조지나. 천한놈, 초음파, 곽엑스, 오썅년. 2013년과 2014년 개명신청자들 이름이다. 여기에 쓰기도 민망한 이름들이 더 많다. 어떻게 자식이름을 이렇게 지을 수 있을까 싶지만, 모두가 부모가 지어준 이름들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새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되자 개명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평생을 부르는 이름이기에 오랜 세월 이름의 덫에 갇혀 살던 사람들에게 행정이 빛을 보였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하고도 맨 처음 불리는 명칭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잘 지어야 인생이 활짝 핀다며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사주와 팔자를 두루 본다는 이름 명인에게 가서 수십만원씩 주고 이름을 짓기도 한다. 위에 나열한 이름들을 작명소에서 돈을 주고 지었을 리 만무하다.
이름대로 된다는 믿음에서인지, 지금은 ‘노인(老人)’이 없다. 최근 들어 노인에 새로운 개명바람이 불었다. ‘신중년’이 바로 새 이름이다. 최근 6075세대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과거에는 통칭 ‘노인’이라고 했으나 이제는 노인이란 말을 노년세대 스스로 거절하며 새로운 이름을 주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이 아닌 신중년은 어떤 사람들인가?
신중년은 대개 6075세대라 불린다. 60세~75세 사이에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누구이길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스스로를 재정의 하고 있을까? 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막 마치고 태어난 이들부터 전쟁이후 태어난 일명 ‘베이비 붐 세대’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단군 이래 첫 공교육을 대대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일구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높은 빌딩을 본 첫 세대이자, 엘리베이터를 타본 첫 세대이다. 이들은 산을 오르지 않고도 먼 곳을 본 첫 세대인 셈이다. 집에서 전화를 받은 첫 세대이며, 이 전화가 청색전화, 백색전화에서 유선전화를 거쳐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경험한 세대이다. 민주주의를 맛보고 경험한 첫 세대이자, 연애의 짜릿함을 느끼며 상투와 한복을 잘라 파마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첫 세대이다. 아스팔트 위를 걸어본 첫 세대이고, 마이카의 첫 세대이다. 주판과 전자계산기부터 컴퓨터까지 사용해본 유일한 세대이고,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첫 세대이다.
어디 그뿐이랴? 거침없는 이혼을 선택한 첫 세대이자, 당당한 재혼을 말하는 첫 세대이다. 자식이 효도하지 않겠다는 첫 세대이자 유산을 남기지 않는 첫 세대이다. 70이 넘도록 일해야 하는 첫 세대이자, 고독사의 첫 사례가 된 세대이다. 호모 헌드레드 100세를 맞는 첫 세대이자, 환갑잔치를 포기한 첫 세대이다. 인공중절수술을 받은 첫 세대이자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첫 세대이다. 안락한 노후를 포기해야하는 첫 세대이자 안락사를 선택하고자하는 첫 세대이다. 계급신분이 없는 첫 세대이자 지독한 경제신분을 갖게 된 첫 세대이다. 배고픔을 넘어 풍요를 경험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첫 세대’인 것은 이뿐 만이 아니다. 더 많은 더 다양한 차원에서 첫 세대인 사람들이 바로 ‘신중년’이다. 이들의 선택은 역사 이래 없던 것이고, 이들의 경험도 전례 없던 일이다. 스스로도 낯설어하면서도 의연히 세월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밀려가지 않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고, 선택받지 않고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끌려가지 않고 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인터뷰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내게 “노인들에게 어떤 문화를 주어야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내 대답은 이것이었다.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누가 감히 문화를 줄 수 있는가?” 새로운 세대로서 ‘신중년’, 바로 이들이 문화 창조자이자 문화 주도자들로 이름에 맞는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신중년, 그 인류의 첫 그림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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