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개인정보… 노인들 금융범죄에 희생
줄줄 새는 개인정보… 노인들 금융범죄에 희생
  • 한성원 기자
  • 승인 2015.04.17 11:17
  • 호수 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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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휴대폰 불법 개통 등 개인정보 유출이 원인

서울의 한 지하철역.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물품보관함에 뭔가를 넣어두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10여분 뒤 이번에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 물품보관함에 있던 물건을 꺼내 가방에 옮겨 넣은 뒤 유유히 사라진다. 60대 여성에게서 남성에게로 전달된 물건은 다름 아닌 현금 5700만원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지만 실상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보이스피싱 사기의 한 사례다. 이 60대 여성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남성으로부터 “개인정보가 유출돼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 금융감독원의 보관함에 돈을 넣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그대로 따랐다가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 이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9명. 모두 60대 이상이었다.

▲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노인들이 각종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문을 닫은 모 의료원에서 폐기된 서류들. 환자들의 개인정보가 버젓이 기록돼 있다.

노인 이용 잦은 병원·복지시설, 정보 새지 않게 해야

지난해에는 휴대폰을 불법적으로 개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억원대의 이득을 챙긴 사기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휴대폰이 없는 사회취약계층 3000여 명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약 6000대의 휴대폰을 개통해 불법으로 유통시켰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에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단말기 값과 통신요금이 청구됐다. 이 사기사건 역시 피해자 대부분이 병원, 요양원 등의 노인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선 두 사기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노인이라는 점과 이 노인들의 개인정보가 본인들이 모른 채 새 나가 사기에 악용됐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 노인들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 사기인지 의심을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휴대폰 불법 개통 역시 사기꾼들이 노인들의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휴대폰 소유 여부까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휴대폰을 갖고 있다면 추가 개통 시 자신의 휴대폰으로 개통 사실이 통보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인들의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한 사기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병원, 요양원, 복지관 등 노인 관련 시설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 정보를 활용한 연구가 늘어남에 따라 노인들의 개인정보 보호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보통 개인정보라고 하면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범위는 훨씬 넓다. 예컨대 재산과 신용정보, 그리고 신체 및 의료정보 등이 개인정보에 포함된다. 또 통화·문자내역과 GPS 위치 정보 등은 물론 신념이나 사상, 성향 등 정신적인 부분까지 개인정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민번호의 유출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사기 사건들이 유출된 주민번호에서 비롯됐음은 이미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주민번호 유출을 막기 위해 관련 법령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령상 근거가 없는 경우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없으며,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민번호는 2016년 8월까지 파기해야 한다. 아울러 주민번호가 유출될 경우 최대 5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법령에 근거가 없는 주민번호 수집 시에는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에는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에서의 개인정보 보호가 시급한 실정이다.
기본적인 개인정보 외에도 병원에서는 노인들의 건강상태나 신체적 특징은 물론 병력 등 민감한 정보들이 유출될 수 있으며, 복지시설에서는 각종 상담이 이뤄지기 때문에 노인들의 정신적·심리적 정보가 공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대수명 100세시대를 앞두고 노인들의 건강과 관련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노인들의 개인정보가 바탕이 돼야 각종 질환의 발병 요인과 형태, 치료와 예방을 위한 근거 등을 포함한 건강지도(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천의 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는 “노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별도의 장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출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며 “사기 등 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뿐만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는 노인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노인복지시설의 경우 노인들의 인적사항과 가정형편, 지원현황 등 민감한 정보를 모두 보유하고 있음에도 열악한 재정 및 예산으로 인해 개인정보 보호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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