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동화’ 보는 듯 70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노인동화’ 보는 듯 70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4.17 14:20
  • 호수 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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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수상회’ 잔잔한 감동
▲ 고집불통 성칠(박근형 분)과 소녀 같은 금님(윤여정 분)은 아이처럼 때묻지 않은 사랑을 보여준다.

후반에 놀라운 반전 ‘묘미’… 독거노인‧치매 문제 녹여내
박근형‧윤여정 커플 연기 화제… 산만한 극전개 ‘옥에 티’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의 홍보포스터에 적힌 유명한 문구다. 영화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 이별 후 서로의 기억을 완전히 지우고도 다시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슴 깊이 새겨진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는 이 문구는 지난 4월 9일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70대 노인의 첫사랑 같은 풋풋한 사랑을 그린 영화 ‘장수상회’가 개봉했다.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함께하며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배우 박근형과 윤여정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틈만 나면 버럭 화를 내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까칠한 노신사 ‘김성칠’(박근형 분). 성칠은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지만 실상은 동네 슈퍼마켓인 ‘장수마트’에서 일하는 평범한 독거노인이다. 이런 그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다정함을 잊은 지 오래다. 어느 날 성칠의 앞집에 고운 외모를 가진 ‘임금님’(윤여정 분)이 이사를 온다. 자신의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언제나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소녀 같은 금님의 모습에 성칠은 당혹스러워 하고, 이런 그에게 갑작스레 금님은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무심한 척 했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성칠. 장수마트 사장 ‘장수’ (조진웅 분)는 비밀리에 성칠에게 데이트를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성칠과 금님의 만남은 온 동네 사람들은 물론 금님의 딸 ‘민정’(한지민 분)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모두의 응원에 힘입어 첫 데이트를 무사히 마친 성칠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금님과의 설레는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성칠이 금님과의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뒤늦게 약속 장소에서 금님을 애타게 찾던 성칠은 자신만 몰랐던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는 노인들의 사랑을 소년 소녀의 때묻지 않은 만남처럼 투명하게 그린다. 소녀처럼 행동이 다소곳한 금님과 한 번도 여자의 손을 잡아본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성칠의 만남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한다. 이와 함께 영화는 노인의 사랑 속에 독거노인과 치매 문제도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사인 노인문제와 TV드라마에서 범람하는 ‘막장’이 아닌 노인들의 ‘무공해’ 사랑을 다뤘다는 점은 장점인 동시에 독이 되기도 했다.
영화는 개봉 전 노인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켰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타지’를 선보이고 있다. ‘죽어도 좋아’ (2002년)와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사실적인 사랑이 아닌 마치 한 편의 ‘노인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주인공은 젊은이들처럼 데이트를 하는데 이 부분은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봐온 모습이라 식상하게 느껴진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초반에 두 어르신이 아이처럼 낙엽을 던지며 노는 모습을 통해 큰 웃음과 감동을 준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또 주변인물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다루면서 영화의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주변인물을 연기한 배우 김정태, 이준혁, 황우슬혜의 활약으로 영화 곳곳에 웃음요소가 존재했지만 극을 끌고 가는 큰 갈등 구조가 없어 절정 부분에 이르기까지 밋밋하게 전개된다는 것도 흠이다.
영화는 금님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극에 긴장감이 흐르면서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으로 인해 영화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로 돌변한다. 이 반전을 통해 다소 지루하게 전개되던 영화는 급속도로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 반전 또한 영화가 가진 양날의 검이다. 감동을 높이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생뚱맞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들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극적인 전환을 통해 영화의 감동이 배가됐다는 평도 많은 반면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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