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게·택배사업… 노인들 자립 돕는 일이면 물불 안가려요”
“국수가게·택배사업… 노인들 자립 돕는 일이면 물불 안가려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4.24 11:29
  • 호수 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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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한국시니어클럽협회 신임회장

전국 15개 시·도에 127개 시니어클럽… 사회적기업 만들어 6만여명에 일자리
어르신들 만든 김치 판촉하다 설움도 겪지만 자립하는 모습 보며 보람 느껴

왕년에 분식집을 했던 노인들이 모여 국수가게를 열었다. 장사가 잘돼 돈도 만지게 됐고 사회적 유대 관계도 회복했다. 혼자서는 못할 일이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 ‘시니어클럽’이다. 현재 전국에 127개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이다. 보건복지부 지정에 의해 2001년 설립됐다. 시니어클럽의 전국적 조직이 한국시니어클럽협회다. 지난 3월 말, 제8대 한국시니어클럽협회 회장에 손경숙(62) 울산중구시니어클럽 관장이 선출됐다. 손 회장은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부터 재가사업, 호스피스까지 안 해본 봉사가 없다. 그런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대통령·국무총리·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등 남들은 평생 하나도 탈까 말까한 상을 모두 수상했다. 지난 4월 말, 서울 대방동에 있는 한국시니어클럽협회 사무국에서 만나 20여년 노인 일자리창출을 위해 땀 흘린 얘기를 들었다.

-회장 선거는 경선인가.
“남자 후보 한 분과 경선을 했어요. 회장 후보는 3년 이상 시니어클럽 운영 경력이 있어야 해요. 저는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을 10여년 운영해오고 있어요.”

-한국시니어클럽협회를 소개해달라.
“전국 시·도에 15개 지회가 있고, 그 안에 127개의 기관(클럽)이 운영되고 있어요. 기관의 직원은 1200여명이고 참여 노인 수는 6만 2000여명으로 70대가 대부분이에요. 고령화 수치가 높은 지역에는 기관 수가 많아요. 원래 보건복지부가 각 구·군에 한곳의 기관을 두기로 했지만 사회복지사업 지방이양과 맞물려 현재는 50% 정도 설치돼 있어요.”

-시니어클럽은 어떤 일을 하는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어르신들이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도록 지원을 하고 있어요.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의 경우는 카페·경양식집·제사음식과 도시락주문배달 등을 하는 17개의 사업단을 갖고 있어요(사회적기업은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 서비스를 제공, 지역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을 말한다). 그 중 10개는 독립법인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보면 과거 분식집을 했던 어르신들이 많더라고요. 10여명을 한 팀으로 만들어 국수가게를 창업하도록 도와드립니다. 사업장 물색부터 레시피 등 기술, 운영 지원까지 모든 걸 지원해드립니다.”

-단순 일자리는 만들지 않는가.
“물론 노노케어, 방역·소독, 보육교사도우미, 베이비시터 등도 운영합니다. 어르신들의 경륜과 건강에 맞추어 새로운 일자리를 발굴하고 적합 직종을 개발하지요. 국가에 노인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건강한 노인 상을 정립하는 일을 통해 우리나라를 활기차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하나의 가게를 창업하는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려요. 초기자본은 정부 노인일자리 지원금으로 하고 부족한 재원은 기업체의 지원 등 지역자원과 연계해 해결합니다.”

-참여 노인은 투자하지 않나.
“대부분 투자 능력이 없는 분들이지요. 어르신들이 일을 통해 소득을 얼마나 얻는 가보다는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기쁨과 보람을 느꼈으면 합니다.”

-노인택배사업단 얘기도 들었다.
“아파트 단지에 택배회사 차들이 다니다보니 교통사고 위험도 있고 택배를 위장한 절도·성폭행 사고도 발생해 주민들이 불안해합니다. 물류회사는 물건 하나 배송하기 위해 아파트 출입구와 현관문 열어달라고 몇 번씩 전화하는 것도 시간 낭비고 경비원은 택배 물품 보관을 달가워하지 않고 분실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아요.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시니어클럽하고 복지부하고 연구한 결과, 실버택배물류회사를 설립해 전동수레, 전동자전거 등을 지원하고 있어요. 아파트 단지 안에 집하장을 만들어 그곳에 배송물품을 갖다놓으면 어르신들이 집집마다 배송을 하는 겁니다. 또 반대로 보낼 물품도 그리로 갖다 놓고요.”

-시니어클럽 일에 보람이 클 것 같다.
“어르신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보면 뿌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지역에서 소규모 김치공장을 시작할 때 저하고 젊은 여실장하고 둘이서 김치 홍보를 하려고 한 기관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기관의 구내식당 영양사에게서 맛을 인정받아야 했거든요. 김치만 들고 가기 뭐해서 수육에다 막걸리도 가지고 갔어요. 국장님, 과장들, 대리들이 차례로 온 다음에 마지막에 영양사가 왔어요. 그들 모두에게 술을 따라주며 ‘어르신들이 정성껏 만들었으니 식당에 넣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일을 마치고 둘이 마주 앉아 서로 술 한 잔 따라주면서 ‘우리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요.”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겠다.
“말도 마세요. 제가 본의 아니게 ‘장사꾼’ 소리를 듣기도 해요. 어르신들하고 감밭 5000평을 임대해 감농사를 지은 적이 있어요. 감은 저장을 못해 단시간에 팔아야 합니다.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전화를 돌려 ‘우리 감 좀 팔아주세요’라고 합니다. 배를 따다 일주일을 앓아누운 적도 있어요. 수확 때마다 전화를 걸어 호소해요. 지인들이 ‘손 회장이 노인복지 위해 봉사한다면서 온갖 것을 다 파는 장사꾼으로 전락했다’고 뒷담화 하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어요. 그 순간 자긍심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계속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김치 홍보 같이 하던 실장하고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힘들어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다’라고요.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 국가는 80~90세까지 살지 모르는 그들에게 복지비용을 대느라 힘들어지고, 경제 자립을 못하는 노인은 자존감 없이 지역사회에 기대 사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걸 막기 위해 술을 따라주었고 그건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우리끼리 자축했던 거지요.”

손경숙 회장은 울산과학대학 사회복지과와 울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울산대학교 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졸업을 했다. 울산 시청에 잠시 근무했다. 1998년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만든 울산실업극복지원센터 집행위원을 시작으로 노인봉사활동에 앞장섰다.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서부터 호스피스 활동까지 전방위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 2004년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을 지정 받으며 시니어클럽과 연을 맺었다. 울산재가노인복지협회장·울산사회적기업협의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시니어클럽협회 이사, 부회장 등을 지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큰상을 많이 받았다.
“상 받을 때마다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행정기관과 봉사자, 지역민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던 일인데 그분들 대신해 받은 거 같아 심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상금도 많았겠다.
“표창장·메달만 주더라고요(웃음). 울산의 한 장학회가 상을 준다고 해 처음엔 거절했다가 나중에 상금이 수백만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다시 상을 받게 해달라고 오히려 조른 적이 있어요. 그 돈이면 겨울에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주무시는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거든요. 이미 다른 수상자를 결정했던 장학회가 제 뜻에 공감해 저를 공동 수상자로 해주고 상금도 주었어요. 남편(공무원) 비자금 합쳐 어르신 20명에게 난방비를 드릴 수 있게 돼 기분이 참 좋았어요.”

-호스피스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임종을 앞둔 분들이 삶을 마무리하는 짧은 시간에 하는 말들이 돈을 더 벌고 싶다거나 일을 더 하고 싶다는 게 아니고 사소한 것들이에요. 가령 친구에게 사과를 하지 못해 후회된다거나, 호젓한 대나무 숲 오솔길을 한 번 더 걷고 싶다는 등 소소한 것들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이 현재 내 옆에 있는데도 먼 곳을 바라보고 사느라고 늘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어르신들이 그런 것들을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노인의 위상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진정한 어른으로 대접을 하고 있는지 조명할 필요가 있어요. 노인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클릭만 하면 정보가 뜨겠지만 그런 인스턴트 정보가 아닌 삶의 지혜가 농축된 노인의 경륜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지역에서 어른으로 자리잡고 있어야만 그 지역은 건강하게 자리매김합니다. 노인의 사회적 역할이 약화된 지역에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손경숙 회장은 한국시니어클럽협회의 1200여명 전담직원들이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밤낮으로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임기 2년 동안 보다 많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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