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마다 사연이 깊은 원로작가의 첫 개인전
작품마다 사연이 깊은 원로작가의 첫 개인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4.24 14:07
  • 호수 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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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미술관 ‘사람을 빚다-백문기 조소’ 전

중학생 때 ‘재생 석고’로 만든 ‘K신부상’ 등 대표작 25점 선봬
88세로 구상조각 한 길… 실제 대상 관찰 후 감춰진 내면 표현

▲ 인상(印象), 1958년 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41년,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A와 B는 일제의 강제동원 명령으로 자신들이 다니던 서울 휘문중학교에 방공호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땅을 파 동굴을 만들던 중 흙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B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A는 먼저 보낸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자주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현장에서 빨간 진흙을 발견했고, 자신의 발을 그려달라던 B의 말을 떠올렸다. 이후 A는 친구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발 모양의 조소작품을 만들었다.
올해 미수(米壽)를 맞이한 조각가 백문기(88)는 맨 처음 작품을 만들던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친구의 발을 본떠 만든 조소품이 운명적으로 그를 조각계에 발을 들이게 만든 것이다.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구상조각의 대표작가인 백문기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람을 빚다-백문기 조소’ 전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이화여대 미술교수로 재직하며 제1회 국전 특선,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거장’의 사상 첫 개인전이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는 백문기가 1940~2000년대 발표한 대표작 25점을 통해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구상미술이란 추상미술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눈에 실제로 보이는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하는 미술을 의미한다.
전시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백문기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지켜낸 ‘K신부상’(1943년)과 ‘L부인상’이다. 특히 ‘K신부상’은 그가 휘문중학교 2학년 재학시절 만든 것이기에 큰 놀라움을 준다. 먼저 떠난 친구를 위해 만든 발 모양 작품을 본 화가 장발(당시 휘문중 미술교사로 재직, 장면 前 총리의 친동생)은 백문기에게 조각가의 길을 걷도록 추천했다. 이후 백문기는 조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파리외방선교회의 줄리안 공베르 신부에게 불어를 배우고 있던 그는 자신에게 불어를 가르쳐주는 공베르 신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신부의 모습을 본 떠 ‘K신부상’을 완성했다.
석고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기였기에 백문기는 군 병원에서 버려진 ‘깁스용 석고’를 구해와 이를 곱게 빻은 후 가마솥에 구워낸 ‘재생 석고’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고개를 숙인 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외국인 신부의 모습을 통해 성직자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순백이었던 석고상에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고뇌하는 표정이 실제 사람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에게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특선을 안 겨준 ‘L부인상’은 젊은 부인의 아름다은 용모를 부각시킨 두상(頭像)이다. ‘L부인상’도 ‘K신부상’ 못지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국전 출품 당시 백문기는 이 작품과 함께 전신상을 함께 선보였는데 심사 도중 전신상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해 전신상 대신 ‘L부인상’이 특선으로 뽑혔다. 또 자신의 며느리와 용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한 노인이 이 작품을 구매해 파괴하려 했다는 숨은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 ‘L부인상’ 역시 반백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으로 빛을 잃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한국 미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로댕, 마이욜, 데스페오 등 20세기 초반 조각가에게 영향을 받은 백문기는 실제 사람의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한 후 작가의 시선을 담아 이를 표현하는 구상미술에 평생을 바쳤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단순히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아닌 고뇌하는 사람의 내면을 보여줬듯이 백문기도 작품을 통해 대상의 감춰진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인상’(1958)이다. 왼쪽에서 봤을 때는 슬픈 표정을, 오른쪽에서 봤을 때는 기쁜 표정을 짓는 여자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흐름과 대조적인 행보였다. 근현대 들어서면서 미술계는 추상조각과 설치작품 위주로 작업이 이뤄졌지만 백문기는 반대편 길을 택했다. 묵묵히 구상미술에 전념한 것이다. 역사가 짧은 한국조각계를 위해 하나의 기준을 세우려고 했던 작가의 고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또 다른 대표작 ‘구상’(1980)에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시인 구상의 모습을 표현한 두상으로 흙을 이용해 눈을 감고 고뇌하는 사람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백문기의 작업실을 방문한 구상 시인이 시를 떠올리는 모습을 관찰한 후 이를 4시간 만에 만들었다. 백문기는 전시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 작품은 친한 친구들이나 평상시에 알고 지내며 머릿속에 넣어뒀던 사람을 끄집어 내 만든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직접 보고 만드는 초상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는 그와 절친한 친구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후 기억 속에 보관해뒀다가 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구상’외에도 ‘화우청초’(1961), ‘조시인’(1981) 등에서는 그가 그려내려 했던 인간의 내면이 잘 표현되고 있다.
전시는 5월 25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 2000원. 문의 02-6925-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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