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식사’에서 벗어나는 법
‘나 홀로 식사’에서 벗어나는 법
  • 한혜경
  • 승인 2015.05.08 10:43
  • 호수 4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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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은퇴자들은 한결같이 혼자 밥 먹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생전 들어가지 않던 부엌에 들어가 주섬주섬 먹을 것을 챙기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서글프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여서 요즘 들어 “밥 먹었니?”라는 전화 인사가 부쩍 늘었단다. 식당마다 초로의 남자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데, 그 자리에선 아내들에 대한 성토가 요란하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것은 은퇴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는 1인 가구의 증가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현재 1인 가구는 약 488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1990년 102만 가구에 비해 4.7배 이상 증가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2030년이 되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1인 가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년에 혼자 사는 남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자료(인구주택 총 조사 표본자료)에 의하면 60대 1인 거주자의 32.2%, 70대의 18.2%, 80세 이상의 13.7%가 남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인 가구 실태 및 인식에 관한 전화조사’ 결과, 1인 가구 남자 어르신의 28.9%가 혼자 사는 데 따르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가사 등 일상생활을 홀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을 지적했다. 1980년대 초반, 일본의 노인 인구 비율은 10% 정도로 현재의 우리나라 수준보다 약간 낮았다. 당시 일본 출판계에서는 작가 사하시 게이죠가 쓴 ‘할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집안일은 여자만 하는 것으로 알고 83년을 살아온 남자 노인이 아내의 죽음 이후 집안일을 배우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노년의 남자들에게 부엌일을 통한 홀로서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부엌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라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할아버지의 부엌’ 속 할아버지처럼 아내가 죽은 뒤 홀로 됐을 때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남자들도 일생 부엌과 친해야 하고 늦어도 중년기가 되면 요리 실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식생활과 삶의 질도 높이고 인생도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더불어 강조하고 싶다. 농촌 어르신의 삶이 도시 어르신보다 풍성해 보이는 이유도 바로 식탁을 나누기 때문이다. 농촌에 갈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이 바로 온 동네 사람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이다. 각자 농사일을 하다가도 점심때가 되면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하고 또 저녁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농촌 어르신들이 도시 어르신보다 훨씬 ‘세련된 인간관계’를 가꾸고 지켜나갈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365일 매일 같이 함께 식탁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게 보통 일인가? 도시에 나간 자식이 잘 되든 못 되든 간에, 돈을 잘 벌든지 못 벌든지 간에, 자주 찾아오든지 안 찾아오든지 간에 어르신들의 식탁은 평등하다. 이들은 나이 들수록 이웃과 친구가 소중하다는 걸 알고 실천하며,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돌아가면서 죽을 끓여준다.
그래서 나는 도시 은퇴남들에게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의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소셜 다이닝’이란 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도 즐기고 인간관계도 맺으며, 혼자 먹으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기 십상인 사람들이 모여 ‘건강한 식생활’을 공유토록 노력하는 모임이다. 단순히 밥 한 끼 해결할 사람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같은 취미, 문화, 여가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2012년 5월에 문을 열고, ‘같이 밥 먹을 사람 찾아요’라는 글을 올리면 희망자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집밥’(zipbob.net)의 누적 참가자가 지난해 6월 현재 2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니 ‘나 홀로 식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외로운 은퇴남들이여, 소셜 다이닝을 통해 함께 먹는 즐거움을 찾으시라. 그리고 가끔은 여자들처럼 분위기 있고 좋은 식당에 가서 여유 있는 점심을 드시는 것도 좋겠다. 여자들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하는 세상이다. 여자들이 남편 죽은 후에도 오래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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