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70대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5.15 11:27
  • 호수 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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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째 개인전 여는 ‘조형산수화’ 개척자 전래식 화백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미술대전)은 현재 국내 신예 미술가들을 위한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198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가 새롭게 개편된 것이다. 당시 통용되던 ‘동양화’와 ‘서양화’의 명칭을 ‘한국화’와 ‘양화’로 개칭했고 수많은 미술가들을 발굴했다.

▲ 전래식 화백이 최근작 ‘신비의 산 마차푸차레’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40여년간 2000여 작품 그려
교수 퇴임 후 직장인처럼 파주 작업실 출퇴근하는 영원한 현역

제1회 미술대전은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는데, 이때 한국화 부문에 ‘여정’을 출품해 대상을 수상한 작가가 바로 전래식(73) 화백이다. 대상작 ‘여정’은 먹과 은빛담채로 예리한 선과 각이 계속되며, 각이 계속 되는 곳에 원을 넣어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여정’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돼 있다.
대상 수상 당시 40대 중년이던 전 화백은 화랑가의 관심을 뒤로하고 돌연 부산으로 내려가 동아대 교수로 변신했다.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붓질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전 화백은 한국화와 서양화를 융합한 ‘조형산수화’를 탄생시킨다. 이에 따라 전 화백에겐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창조했다는 찬사가 따라다닌다. 반면에 한국화가 사이에서는 이단아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오는 6월 10일~30일 부산 K갤러리에서 열릴 자신의 20번째 전시회를 준비 중인 전 화백에게 그의 미술인생을 들어봤다.

-교수 은퇴 후 매년 전시회를 여는데.
“70대로 접어드니까 그림이 보인다고 할까요? 이제 그림이 뭔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거 같습니다. 그래서 좀더 바쁘게 그림을 그려서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남기고 싶은 욕심이 들고 있어요. 해야 될 일들이 많이 쌓여 있어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미술사에 남을 작품을 더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골프를 칠 시간도 낚시할 시간도 없어요. 그 시간을 아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직업이 화가이지만 취미도 그림입니다.”

-한국화를 그리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중학교 다닐 때 미술을 지도해준 선생님이 한국화를 전공했어요.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고민 없이 그쪽 길을 선택했죠. 자연스럽게 대학(서라벌예대)에서도 동양화를 선택했습니다.”

-제1회 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출품 당시엔 그런 큰 상을 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어요. 운이 좋아서 받은 거라 생각해요. 실력도 없었고…(웃음) 당시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아 두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대상을 받은 게 미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부상(副賞)으로 세계 유명미술관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는데 각국을 돌면서 그림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 경험으로 평생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생각해요.”

-당시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어느 정도였나.
“대상 수상소식이 대부분의 일간지 사회면 톱기사를 장식했어요. 각 방송국 별로 특별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해외신문에도 보도됐죠. 최근 대상 수상자들과 달리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화랑가의 관심도 대단했고요.”

-동아대 교수로 변신한 이유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이 작품을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화백은 전통 한국화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색 표현이 뛰어난 서양화의 장점을 접목한 ‘조형산수화’라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다. 먹 대신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색을 입혔고 실제 산의 모습과 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을 더해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지게 했다. 산이 풍기는 기운을 그리는 동양화의 정신을 지키면서 화려한 색감과 상상력을 더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탄생시켰다. 또 전 화백은 한국의 명산 대신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의 산을 그리며 좀더 거칠고 웅장한 산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 전 화백은 한국화의 선과 서양화의 색을 융합해 조형산수화를 개척했다. 도판은 ‘히말라야의 여정’(2013).

-조형산수화의 탄생 배경은?
“컬러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가 오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스타일의 산수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어요.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대부분이 서양 옷이지만 우리가 서양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산수화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양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서양화의 장점을 받아 들여 새로운 한국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인한 비판도 있는데.
“지금도 엄청 많은 비판을 받아요. ‘전래식이가 무슨 한국화가냐 서양화가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한국화와 서양화를 선을 그어 나누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양복을 입었다고 서양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림이 풍기는 느낌이 동양적이면 한국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림이라는 게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리면 재미없습니다. 재미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죠. 이를 고민하다 보면 그림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전 화백은 6월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비의 산 마차푸차레’를 보여주면서 “그림에도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산꼭대기의 신비로운 기운이 주연이라면 그 아래 다양한 색으로 주연을 부각시킬 조연들이 배치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덜 가는 곳에는 ‘엑스트라’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뤘을 때 그림의 ‘격’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산을 많이 찾아 다녔다.
“2011년 거칠고 웅장한 산을 그리기 위해 벼르고 별렀던 히말라야 산맥의 고산(高山)을 찾아 3000m 부근까지 올라갔어요.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산이 보이는 곳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눈 덮인 히말라야의 고산이 풍기는 신비로움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트래킹을 하면서 산을 스케치하고 사진 찍은 게 미술인생 후반기의 큰 재산이 됐어요. 현재는 그걸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산을 그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작고 평화롭죠. 하지만 히말라야의 거칠고 웅장한 고산과는 달라요. 세계화의 시대니까 그림도 세계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림의 서명을 할 때 성은 영어로 쓰고 이름은 한글로 쓰고 있습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성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외국의 산을 그리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걸 원합니다. 같은 걸 보여주면 싫증을 내요.”

-그림을 완성했다고 느끼는 시점은 언제인가.
“콕 찍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림은 탄생하는 거에요. 단숨에 물 흐르듯이 그려져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조금 더 잘하려고 자꾸 손을 대죠. 다음날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덧칠하고 그 다음날 또 손을 대고 그럽니다. 1년을 두고 보는 작품도 있어요. 이제는 됐다 싶을 때 그림에 서명을 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올 때가 있어요. 정말 기쁩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팔 수 없죠. 이런 기쁨을 느끼고 싶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 달에 열심히 그리면 5점 정도 그립니다. 40여년 간 그렸으니까 2000점 미만의 작품을 남긴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작품은 대상을 안겨 준 ‘여정’과 히말라야에 다녀와 작업한 최근작들입니다.”

전 화백은 현재 평일 오전 8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직접 40여분 동안 차를 몰아 작업실로 이동한 후 해가 지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2008년 부산 동아대 예술교수직에서 물러난 후 지난 7년간 더 왕성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은퇴 후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시간을 작품 활동에 쏟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가.
“파주 작업실 앞마당에 100평가량 되는 텃밭이 있어요. 고구마‧감자‧오이 등 채소를 심어 붓을 놓고 쉬는 틈틈이 가꾸고 있습니다. 매년 제가 직접 키운 배추로 아내가 김장을 하고 있죠. 자연과 같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요. 물론 나이 때문에 아픈 곳이 있긴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어요.”

-앞으로 계획은
“그림은 격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표현으로 ‘격싸움’이라고 하는데요. 격을 갖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합니다. 시대에 뒤쳐지지 않게 자꾸 변해야 해요. 또 능숙해야 합니다. 그림을 가지고 놀아야 합니다. 보면 볼수록 자꾸 생각이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연륜이 있어야 합니다. 젊음의 패기로는 부족하죠. 이런 점에서 미술가의 전성기는 50대 이후가 많죠. 저도 제가 개척한 길을 더 의미 있고 깊이 있게 완성해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은퇴가 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잡고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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