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부추기는 자녀들…그 뒤엔 재산상속 욕심
이혼 부추기는 자녀들…그 뒤엔 재산상속 욕심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5.22 11:33
  • 호수 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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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 상속권 있어 재산분할 시 준당사자 역할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한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이혼에 합의 해주세요.”
한 달 전 A어르신(74)은 차남과 딸들로부터 이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이혼합의 서류를 들고 온 자녀들은 “어머니가 그간 아버지의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로 힘든 삶을 살았으니 서류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말했다. 또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인한 일정량의 재산도 요구했다. 그러자 장남이 이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A어르신의 부부생활 중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는 인정하나 이혼으로까지 번질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일부, 상속분 조기 수령하려 부모 이혼 종용하기도

A어르신과 부인 사이 그간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혼은 일종의 ‘금기’로 치부한 채 견뎌냈다. 알고보니 자녀들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이혼 사유는 부부간의 불화이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부모의 재산을 빨리 상속받으려는 자녀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A어르신과 부인은 자녀들의 분쟁 사이에 낀 채 한숨만 내뱉는다.
최근 노년 부부의 ‘황혼이혼’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통계청 ‘2014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혼인한 지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1만300건으로 전년보다 10.1% 늘어났다. 2012년 8.8%, 2013년 8.4% 증가한 것과 비교해 증가폭이 크다. 이 가운데 재산분할 시 자녀들이 개입해 소송의 준당사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본인들 몫의 상속분을 조기에 챙기려는 사례도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부부 모두가 이혼을 원할 경우 소송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재산 정산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지 않고, 법률적인 자녀 양육의무도 벗어난 경우, 재산분할 및 위자료를 얼마나 더 가져오느냐 혹은 얼마나 덜 뺏기느냐가 소송의 핵심이 된다. 이때 상속권을 지닌 자녀들이 소송 과정에 개입된다.
자녀들은 법적으로 재산분할에 관한 직접적인 권리가 없으나, 재산분할은 상속과 연동되는 부분이다. 자녀들은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상속분이 포함된 재산분할을 빌미로 자신들이 편을 든 부모의 이혼을 종용하곤 한다. 이때 피고는 남편인 경우가 많다.
법부법인 혜안 신동호 변호사는 “결혼한 지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상담 내용 중 상당수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와 부인에 대한 괄시가 원인”이라며 “이럴 경우 자녀들이 직접 어머니 편에 서서 합당한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요구하는데, 일부에 불과하지만 본인들의 상속분을 챙기기 위해 부모 뒤에서 이런 과정을 유도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배우자의 외도문제도 노년 이혼 사례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경우에도 조기 상속을 노린 자녀들의 이혼 유도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B어르신(74)은 최근 전처와의 관계를 시도 때도 없이 캐묻는 부인의 의심에 지쳐 이혼소송 신청을 했다. 이후 A어르신의 자녀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는 장남을 제외한 자녀들 대부분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전처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그의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5000만원의 위자료와 5대5 비율의 재산분할도 요구했다.
재혼 후 전처와 연락 한 번 없던 B어르신은 황당했다. 알고 보니 자녀들 중 일부가 본인들에게 할당될 상속분을 조기 확보하려 다른 형제들을 꼬드겨 이혼을 부추긴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이런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밝힌다.
신동호 변호사는 “어르신들 중엔 전처와 후처 모두 있는 분들도 있다. 이런 경우 자녀들은 본인들의 상속분에 민감해진다. 만약 전처가 혼인이나 사실혼 기간을 빌미로 재산분할을 요구해 재산 일부가 그쪽으로 간다면 본인들의 상속분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혹은 계모와 자녀들이 대립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상속 문제로 이복형제와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노년 이혼은 부모 혼자만의 결심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찾긴 힘들다. 이는 부모와 자녀 모두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는 바가 큰 우리나라의 전통적 정서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 이혼의 준당사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자녀들의 개입을 부모들이 막기란 거의 불가한 것이 사실이다.
신 변호사는 “이런 불상사들을 예방하려면 의사결정의 주체는 노부부 자신들이라는 자각을 가져야 하며, 그에 앞서 이혼은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가정을 해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지고 있는 ‘노인 고독사’ 등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신중한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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