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어른은 어른이시다”
“역시 어른은 어른이시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5.29 13:33
  • 호수 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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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향이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다. 봇물이 터지는 듯 했다. 노인 연령 기준 상향 조정 얘기다. 발단은 이렇다. 지난 5월 7일, 서울 효창동의 대한노인회 중앙회 3층 회의실. 2차 이사회가 막 끝나갈 무렵 이 심 회장이 이 사안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인간 수명 100세시대, 현재의 노인들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체력과 건강을 갖추고 있다. 반면 노인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복지비용을 대는 국가는 허리가 휠 정도이다. 그동안 노인회는 나이를 올리자는 일부 단체의 주장에 공감은 하지만 일자리나 노인빈곤 등 현실에 비추어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당사자인 노인이 먼저 나서 공론화의 물꼬를 터주자. 그러나 당장 70세로 한꺼번에 올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4년에 한 살씩 늘려 20년에 걸쳐 70세로 조정하거나 2년에 한 살씩 올리는 식이라면 사회적 충격이 덜할 것이다. 이 역할은 정책 결정자나 전문가들에게 맡기도록 하자. 대략 이런 취지였다.
기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노인의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린다면… 당장 65~69세에 해당하는 170만여명의 노인 얼굴이 떠올랐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이 최고인데, 기초연금을 준 게 엊그제인데, 지하철 무료승차로 간신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임플란트 하려고 잇몸을 악물고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얼마인데… 오만가지 생각이 눈 깜짝 할 시간에 머리를 스쳐갔다. 과연 이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소한 몇몇은 반대하겠지 했으나 오산이었다. 모두가 이 심 회장의 말에 찬성했다. 깨끗한 만장일치였다.
며칠 후 이 심 회장은 위의 취지를 뼈대로 A4 한 장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 조선일보 편집국에 이메일을 보냈다.
원고를 보내고 보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 5월 26일자 조선일보 1면에 건빵만한 크기의 활자로 관련 기사가 실렸다. 역시 조선일보다웠다. 사안의 중대함과 파급효과를 예감했는지 복지전문기자의 심층취재 기사와 해설기사, 이 심 회장의 기고문 등이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파장은 컸다. 그날 저녁 SBS· KBS·MBC 등 지상파 3사와 TV조선 등 종편들이 한목소리로 이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도 일제히 이 사안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당사자인 대한노인회가 먼저 연령 상향을 공론화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고, 동아일보의 정성희 논설위원은 “모두가 공짜만 바라는 시대에 복지 혜택 축소 논의를 터준 대한노인회를 보며 ‘역시 어른은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심 회장은 ‘생방송 오늘 정용실입니다’(KBS), ‘퇴근길 이철희입니다’(교통방송), ‘세상을 연다 박찬숙입니다’(경기방송) 등에 출연하는 등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갔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 사회단체 등에서 노인나이 상향 조정 공론화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국회에서 파행을 겪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비교됐다. 공무원노조는 하루 80억원 가까운 적자를 국민혈세로 메워야 하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고 하자 공론화 장에 몰려가 물리력을 행사하고 도로를 점거한 채 연일 불법시위를 벌였다. 대한노인회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는 자기희생의 솔선수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히 사회를 책임지는 어른다운 결단이다. ‘위대한 나라에서는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어른이 구한다’는 옛 철학자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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