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단절
전통의 단절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5.05.29 13:33
  • 호수 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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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결혼식에 갔다. 주례 목사는 결혼예비학교에서 신혼부부를 몇 주간 교육했다고 한다. 결혼식 후 양가 어른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지에 신부는 일주일에 한 번 전화 드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찾아뵙겠다고 썼다고 했다. 주례 목사는 칭찬하는 말투로 신랑신부를 추켜세웠다.
나는 순간 망연자실하였다. 시댁 부모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고 한 달에 한 번 찾아 가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게 정말 제대로 된 일인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아무리 핵가족이 심화됐다고는 하지만 부모 자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게 보편적이라는 생각은 언제부터 일어난 현상인가?
요즈음 젊은 부부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니까 평일에는 전혀 짬이 없을 것이고, 주말에도 나름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쉬기도 하고, 장도 보고, 취미생활도 해야 할 터이니 매주 시댁에 가서 어르신 봉양하라고 하면 무리인 것은 틀림없다. 자식이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 한다면 일 년에 두세 번 보는 것도 감지덕지할 판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찾아 가는 것을 잘하는 거라고 보는 생각의 배경에는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족이 많이 있는 경우에는 집안 대소사가 자주 있을 터이니 따지고 보면 굳이 한 달에 한번 가겠다고 계획을 하지 않아도 평균 한 달에 한번은 자연스럽게 시댁에 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시댁 부모 입장에서 한 달에 겨우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아들 내외의 효도(?)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부모가 할 일이 별로 없어 자식 내외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뜸하게 만나게 되면 자식이지만 대화하기도 어색하다.
손주를 낳으면 아이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자녀와 자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손주 낳기만을 기다리는 조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맞벌이 하니까 아이를 전담해서 봐달라고 할까봐 무서워서 아이 언제 낳을 거냐고 묻지도 못한다고 한다. 자조적인 단어 ‘황혼육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이다.
물론 만나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만남의 질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도 의미 있는 만남이라면 그게 더 좋을 수 있다. 오래 전 교육노년학자인 올포트라는 학자는 접촉가설(contact hypothesis)이라는 주제의 연구에서 젊은이의 노인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만남의 빈도에 있지 않고 만남의 질에 있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사람 산다는 게 부딪히면서 사는 것 아닌가? 가족이란 자주 만나서 좋은 일, 싫은 일 겪으면서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주 만나야 무슨 의미도 찾고, 그 의미를 전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노인 심리에는 ‘유산을 남기고 싶은 심리’가 있다. 노인이 평생을 살면서 가치 있다고 평가한 생각과 이념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심리이다. 그런데 만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를 전수하나?
물론 요즘에는 아쉬운 대로 이메일이나 휴대폰의 문자를 이용해 생각을 전달할 수는 있다. 복잡하게 문장을 생각할 필요 없이 이모티콘 하나를 찍어 느낌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간접적인 수단은 한계가 있다. 가족의 전통은, 아니 사회적 전통도, 선대와 후대가 직접 만나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쇼핑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면서 이뤄지는 대화와 느낌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아닐까? 같은 집에서 자고 일어나 눈곱 낀 채로 아침인사를 하면서 같은 식구임을 확인하는 것 아닌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전통의 단절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 그동안 노인의 사회적 역할 리스트 중에 중요한 것으로 꼽았던 ‘전통의 전수’라는 항목은 이제 접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식들이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데, 아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데, 강제할 방법은 없다. 도시에서는 자식들이 제 밥벌이 하느라 시간이 없지, 농촌에서는 전수받을 젊은이 모습을 찾아 볼 수도 없으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인은 그냥 뒷방으로 물러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전통이 부재한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오늘은 문장 속에 유난히 물음표가 많다. 내가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네라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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