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전문의 정의화 국회의장
신경외과 전문의 정의화 국회의장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6.19 13:36
  • 호수 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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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의사가 됐다.”
정의화(67) 국회의장 얘기다. 정 의장은 신경외과 전문의다. 23년간 3000여명의 뇌수술과 2000여명의 척추수술을 집도한 미세뇌혈관수술의 명의다. 국회에서도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권익현 전 의원과 국보법 폐지반대 연설 도중 실신한 김용갑 전 의원을 응급조치해 ‘의원 119’란 별명을 얻었다. 외국 출장 중 비행기에서 위급한 승객을 구하기도 했다.
정 의장의 원래 꿈은 법관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대를 나와 교장을 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 의사가 그나마 안정된 직업이라는 생각에서 아들에게 밀어붙였던 것이다. 정 의장은 부산고·부산대 의대를 나와 연세대 의대에서 석사, 인제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처음엔 정형외과를 전공하려 했다. 그렇지 않은 건 역시 신경외과의인 형의 영향이 크다. 정 의장은 “뇌출혈·교통사고 등은 주로 한밤중에 발생해 의사로서 무척 힘든 분야다. 형수도 산부인과 전문의라 나중에 가족이 모여 병원을 하면 형님과 번갈아 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신경외과를)택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정 의장은 부산의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원장을 오래 했다. 원래 이 병원은 장인 소유였다. 장인 역시 신경외과의였다. 서울에 침술을 배우러 왔다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사고(1974년) 당시 희생됐다. 정 의장은 병원을 물려받아 60 병상에 불과했던 병원을 현재 의사 100여명, 1200여 병상의 대형병원으로 키워놓았다. 부인이 이사장으로 있다.
정 의장은 40대 때 하루는 수술을 하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수술을 해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평생 몇 사람이나 될까. 정치를 잘못하면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잘못된 정치를 내가 들어가서 한 번 바꿔볼까”. 기회가 왔다. 1996년 15대 총선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부산 중·동구에 출마해 무난히 당선됐다. 정 의장은 “8세 때부터 살았던 동네였고, 부모·처가·형수까지 토박이였다. 다녀간 환자, 가족 친지 표만 모아도 1만표는 너끈히 될 거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19대까지 내리 당선됐다.
국회에 들어가 주력한 건 영호남 화합이었다.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데다 그나마 동서로 나뉘는 건 너무 큰 비극이라는 생각에서 의원이 되기 전부터 뜻 있는 이들과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결성해 두 지역의 갈등을 없애고 우의를 돈독히 하는 활동을 해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건의해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광주명예시민증·전남여수명예시민증(2008년)을 각각 받았다. 사석이든 공석이든 이 일을 자랑스럽게 언급하곤 한다.
그는 “정치는 민본(民本), 인술은 인본(人本)으로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의사도 마음먹기에 따라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시술을 해주고, 정치인도 소외된 계층을 위해 좋은 법을 만들어 그들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일을 해 둘은 같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최근 대한노인회 노인지도자 30여명을 국회로 초청해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심 대한노인회 회장이 당사자의 불이익을 감수한 채 노인나이 상향조정 공론화의 물꼬를 트겠다고 한 말에 감명 받아 이 심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마련한 자리였다. 정 의장은 인사말 끝에 “아침마다 비타민C 2000㎎을 먹고 당뇨병이 심하지 않다면 오렌지 주스를 많이 마시면 메르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의사란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날 간담회는 정 의장의 독무대였다. 중간 중간 개인적 삶을 소개하며 2시간 30여분 동안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질문도 하는 등 노련한 회의 진행이 돋보였다. ‘국회법 개정안’ 등 여야가 충돌할 때마다 중간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절충안을 이끌어내는 국회의장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다. 이날 한 노인지도자는 “노인을 위하는 진정성과 배려, 따듯한 인간미를 느꼈다”며 “국회에 정 의장 같은 이가 더 많았더라면 구태여 국회선진화법 따위를 만들어 스스로 ‘식물국회’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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