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얼굴 모르는 독거노인에 4년간 ‘손 편지’
중학생이 얼굴 모르는 독거노인에 4년간 ‘손 편지’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6.19 13:50
  • 호수 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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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나산중 이정선양, 서영림 어르신과 편지로 인연
▲ 지난 6월 16일 전남 함평 나산중학교 이정선양과 서영림 어르신이 학교에서 만났다. 서 어르신이 이 양이 선물한 인형을 자랑해보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행사로 시작… 이후 꾸준히 편지 보내
서 어르신 “편지 볼 때마다 눈물 나”… 고마움에 장학금 전달

“우리 정선이 만날 생각에 설레서 잠도 설쳤어요. 만나면 꼭 안아줄래요.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6월 16일 오후 2시, 전남 함평에 사는 서영림(78) 어르신이 관내에 위치한 나산중학교를 찾았다. 4년간 꾸준히 안부편지를 보내온 이정선(15) 학생과 만나기 위해서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지내온 서 어르신에게 이정선양의 편지는 큰 위로와 힘이 됐다.
그런데 서 어르신은 정선이에게 답장을 한 번도 보내지 못했다.
“글이 서툴러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전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러 직접 찾아왔죠.” 이유를 설명하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서 어르신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사실 그는 일주일 전 학교를 방문해 정선이를 만난 적 있다. 그땐 서로 낯설어 많은 이야기를 못 나눈 채 헤어졌다. 대신 자녀들이 준 용돈을 모아 장학금을 건넸지만 아쉬운 마음이 커 재차 학교를 찾은 것이다. 그는 이날도 서먹한 만남이 될까봐 마음을 졸였다.
잠시 후, 학교 휴게실에서 서 어르신과 정선이가 만났다. 이내 두 사람은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한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오늘은 얘기 많이 해요.”
“그래 아가! 그간 잘 지냈니. 공부는 잘 하고 있고?”
서로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서 서먹함은 볼 수 없었다. 이윽고 정선이가 서 어르신 손에 인형을 하나 쥐어줬다. 일주일간 이번 만남을 기대하며 직접 만들었단다. 그러면서 “꼭 가방에 넣고 다니셔야 해요”라며 당부한다.
안부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 어르신은 어린 소녀가 생면부지의 노인에게 왜 계속 편지를 써왔는지 궁금해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정선이는 “우리 할머니 같아서요. 편지를 쓰며 제 자신도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라고 설명한다.
정선이는 현재 언니, 동생, 할머니와 함께 친척 집에서 산다. 부모님과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래전부터 떨어져 지내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가 감당해내기엔 힘든 환경이다. 이런 정선이 곁엔 할머니가 있었다. 어린 손녀가 엇나가지 않고 착실히 학교생활을 하도록 보듬어 줬다. 그러다 4년 전,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독거노인 대상 편지쓰기 행사에 참여하게 됐는데, 정선이의 편지 수신자로 서 어르신이 선정됐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과제로 받아들였지만 정선이의 생각은 달랐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힘들 때 하소연하고, 즐거운 일을 알려줄 수 있는 할머니가 한명 더 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편지 쓰는 시간이 즐거웠죠. 또 제 편지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생각나 멈출 수 없었어요.”
정선이의 말에 서 어르신이 눈물을 훔친다.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워요. 사실 편지 볼 적마다 눈물을 닦아요”라고 답한다.
최근 정선이가 보낸 편지엔 “할머니 혼자 지내시니 외로우시죠. 저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데 두렵고 무섭더라고요.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외로움을 잘 알기에 할머니의 외로움을 덜어드리려 편지를 씁니다”라고 적혀 있다.
서 어르신은 그 편지를 보며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 와중에 저를 위로했어요”라며 정선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 편지로 이어진 서영림 어르신과 정선이의 인연은 학교의 자랑거리가 됐다.
나산중학교 서인규 교장은 “그간 학생들이 홀몸어르신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이렇게 해당 학생을 찾아온 경우는 서 어르신이 처음이다. 우리 학교는 서영림 어르신과 이정선 학생의 사례를 롤 모델로 홀몸어르신 대상 편지쓰기 행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제 정선이가 교실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서 어르신과 정선이는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아가! 장래희망이 사회복지사라고. 지금처럼 착한 마음 갖고 책 많이 읽으면 꼭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이 할미가 항상 응원할게.”
“고맙습니다! 그때까지 공부 열심히 할게요. 할머니도 건강하셔야 해요.”
이상연 기자 lees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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