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정부는 뒤에서 기업 돕는 식으로 가야 해요”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정부는 뒤에서 기업 돕는 식으로 가야 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7.03 13:40
  • 호수 4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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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락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

하버드대 경제학도와 중국 공산당의 필독서 ‘한국 경제의 굴기’ 펴낸 경제학자
“우리나라 가계부채 많아도 대신 경제 규모 배로 늘린다면 그리스처럼은 안 돼”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송병락(76)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전략 연구가이다. 그가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한국 경제의 굴기․1990년)란 책은 한때 하버드대 경제학도들의 교과서이자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필독서 중 하나였다. 지금도 베트남·타이완 등 외국에서 읽히고 있다.
최근 송 원장이 ‘전략의 신’(쌤앤파커스)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동·서양의 대표적인 병서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바탕으로 경쟁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여의도 전경련에 있는 교육원에서 만나 노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전략과 글로벌 경제 얘기를 들었다.

-노인들은 이 책에서 무얼 얻을 수 있나.
“저 역시 70대에요. 인생을 야구에 빗대서 말하면 저는 7회전을 뛴 겁니다. 2회전, 3회전에 홈런을 때릴 수도 있지만 4회전, 9회전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또 살다보면 연장전을 할 수도 있지요. 인생을 길게 보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나누며 몸을 건강하게 지켜야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나.
“늙어서 자식, 며느리와 싸움을 잘 해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중요해요. 옛말에 부부는 절친한 원수라고 해요. 원수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어머니와 부부싸움에서 매번 지는 아버지가 딱해서 아들이 ‘왜 맨날 지느냐’고 물었어요. 아버지는 ‘자세히 봐라. 내가 항상 져주는 건 아니다. 중요한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고 했어요. 잠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까 세상에 중요한 건 하나도 없더라’고 말했어요. 싸울 경우에는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 피해를 적게 주고 되도록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해요.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전략의 신’은 어느 지경을 말하나.
“본연의 기술인 정(正)에 상대가 어려운 변칙인 기(奇)를 더해 승부를 겨루는 기정 전략, 상대의 강점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융합 전략, 상대의 강점을 허무하게 만들고 나의 약점을 알찬 무기로 바꾸는 허실(虛實) 전략을 잘 구사하는 걸 말하지요.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조선소도 없이 해외에서 배를 수주한 정주영 회장 같은 이들이지요.”

-기, 정이 무슨 말인가.
“다시 야구에 비유하자면 투수는 타자를 직구(정)로 맞서다가 커브, 슈트,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기)로 승부를 결정짓지요.”

-책에서 ‘손자병법’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일본 최고의 자산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자기가 읽은 4000여권의 책 중 인생 최고의 책이 ‘손자병법’이라고 했어요.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하는데 그 책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해요. 요즘도 사업의 전환점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 책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내용이 들은 그의 전기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손자병법’의 핵심은 무언가.
“싸우지 않고 상대를 이기는 것입니다.”

-책을 쓰면서 베트남의 전설적인 장군도 만났다는데.
“20세기의 명장군 보응우옌잡 장군입니다. 그는 경제력이 20배나 되고 첨단 무기를 갖춘 프랑스와 싸워 이겨 나라를 해방시켰어요. 역사상 자기 힘으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례입니다. 그는 또 자기보다 경제력이 200배인 미국과 싸워서 이겼어요. 월남전 얘기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10만 대군과도 싸워 이겼습니다. 베트남의 국부로 대접 받다 2년 전 102세로 사망했어요.”

-비결은 무언가.
“바로 앞에서 말한 기정 전략이에요. 베트남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어요. 보응우옌잡 장군은 정글전투, 유격전 등 미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능수능란한 기정 전략을 썼어요. 그는 적이 전면전을 원하면 국지전으로 대처하고 속전속결을 원하면 지구전을 하고, 정규전을 원하면 비정규전으로 갔어요.”

송병락 원장은 경북 영주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송 원장은 “내 인생이 하마터면 오리 농사꾼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며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졸업 후 사범학교에 합격해 입학금까지 납부했지만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입학금을 환불받았다. 의무교육은 그것으로 끝인 줄 알고 당시 인기 있었던 오리를 키우려고 했다. 농사 지으며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는데 너무 재밌어 참고서를 몽땅 외울 정도였다. 그 무렵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1등 졸업생에게 서울 상대 진학 시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 학교에 가까스로 진학했다. 요행히 열심히 공부한 결과 장학생 선발시험에서 수석을 했다. 합격 통지를 받아들고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화장실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 상대에 낙방하면 장학금은 무효였다. 혼신을 다해 분초를 아껴 공부한 덕에 합격했다. 동기생이 진념 전 경제부총리,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다.
송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 명예 교수이다. 하버드대 초빙교수, 케네디스쿨 연구교수 등으로 재임하며 동아시아 경제에 관한 강의와 폭넓은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정책실장과 한국과학기술원 대우교수, 국제연합·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자문위원을 지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벽을 못 넘고 있다.
“정권마다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어요. YS가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DJ 정부는 중소기업 벤처로 간다고 재벌그룹을 해산시키려 했지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위협이 됐고요. 국내의 투자 환경도 좋지 않아요.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수도권 규제 때문에 안 된다고 그러고, 자동차는 강성 노조와 고임금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대국이지만 개인은 가난하다.
“매일 빈곤 때문에 자살하는 이가 40명이나 됩니다. 미국은 1750년부터 선진국의 길을 갔어요. 그래서 쌓아놓은 재산이 많아요. 우리는 축적된 재산이 없어요. 고속도로, 지하철 만드느라 다 써버렸어요. 이런 게 50년 전에 다 됐더라면 정부가 다른 곳에 쓸 수가 있었겠지요.”

-노인나이 상향 조정을 어떻게 보나.
“개인적으로는 올려도 좋고 현 상태도 좋아요. 결국은 연금 문제에요. 과거에는 정년하고 70세 쯤 되면 대부분 세상을 떴지만 요즘은 백세까지도 사니까 국가의 부담이 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연금을 낮추려고 하고,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려고 기업에 세금을 더 내라고 하니까 기업은 더 안 되는 거고 따라서 일자리도 안 생기게 됩니다.”

-노인 일자리가 문제다.
“미국의 월마트는 종업원이 220만명이에요. 그런 회사를 몇 개 만들어 거기서 일하고 월급 받아 생활하고 퇴직하면 회사로부터 연금도 받는 시스템이 돼야 해요. 국가는 뒤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 하는 겁니다.”

-기업의 몫이라니….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사상이 강해서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를 물고 늘어집니다. 세월호 사고도 그렇고 교통사고만 나도 그래요. 억지를 쓰는 거지요. 좌파 사람들은 데모하고 그러면 먹을 게 생기니까 자꾸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겁니다.”

-미국·중국·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 어떤 전략을 써야 하나.
“융합 전략이에요. 각 나라의 강점을 모아 우리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K팝에 비해 일본가요는 게임이 안돼요. 화장품도 우리에게 중국이 바짝 엎드려요. 세계 유명화장품회사가 한국 콜마에서 원료를 수입해갑니다. 모든 걸 다 잘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잘 하는 부분이 많아요. 스위스가 시계와 금융(은행)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듯이 말입니다. 싱가포르가 자동차를 만들어내겠다고 땅 파고 공장 짓다가 도로 뜯어냈어요. 우리는 독일보다 TV·PC·스마트폰 등을 더 잘 만들어요. 일본보다 조선·철강이 앞서고 최근엔 현대차가 독일이나 일본차보다 성능이 좋다는 놀라운 보고서도 봤어요. 그런 장점들을 살리는 겁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냈다.
“과도한 복지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어느 정도로 심각했느냐, 예를 들어 제가 이 나이에 대학에서 태권도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나라에서 학비를 대줍니다. 졸업 후 일자리를 달라고 하면 경기장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 대신 태권도연맹에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그런 자리를 50개, 100개씩 마구 만드니 나라가 온전할 리가 있겠어요.”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100조원인데 우리도 그리스처럼 되는 거 아닌가.
“대한민국 경제규모가 1500조에요. 이걸 3000조로 늘리면 그 정도의 빚은 괜찮은 거에요. 그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이에요.”

-자유와창의교육원은 어떤 곳인가.
“국가는 문(文)·무(武)·부(富)가 균형 있게 발전해야 돼요. 우리는 문은 강하지만 무와 부가 약해요. 그걸 보충하는 자료를 만들고 교육도 하는 곳입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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