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죽음 갈망했던 원로만화가의 새로운 삶
한때 죽음 갈망했던 원로만화가의 새로운 삶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7.03 14:36
  • 호수 4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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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까지 생각했던 원로 만화가 김영진 어르신이 주변의 도움으로 자활에 성공했다. 사진=조준우 기자

서울 회기동 희망복지위, 김영진 어르신에 도움의 손길
놓았던 펜 다시 잡아… 그림 실력 소문 나 강사로도 활동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주민센터가 주관한 ‘저소득 주민들의 월세 지원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에서 특별 행사가 진행됐다. 원로 만화가인 김영진(74) 어르신을 초빙해 손님들의 캐리커처(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부각한 그림)를 그려 판매한 것.
이날 김 어르신의 표정은 내내 밝았다. 몇 달 전까지 극심한 생활고로 그림 작업은커녕 삶의 의욕마저 상실했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 그는 70년대에 매달 단행본 3권을 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만화가였다. 한국만화가협회에 이름을 올린 뒤 순정·명랑·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순정만화는 ‘조애리’, 시대만화는 ‘김현영’이란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의 작업실은 이화여대 앞 하숙집이었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탄생된 그의 작품들은 반응이 좋아 매달 상당액의 원고료를 받았다.
김 어르신은 “현재 가치로 900만원 가까운 금액이었다. 하숙비와 조수의 수고비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액수가 남았다”고 회상한다.
제법 많은 돈을 쥐게 된 그는 80년대 초부턴 그림 작업을 접고 자개장그림, 방수건축 제작업체를 운영했다. 그러나 그만 사업체가 부도가 나 버렸다. 사업경험이 전무한 탓이 컸다. 이때부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다.
이후 출판소 실장, 페인트 화가로 활동했으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마지막엔 적성과 동떨어진 문방구도 운영해봤으나 형편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초엔 생활고로 인한 가정불화가 커져 부인과 헤어지게 됐다. 그러면서 세 딸과도 멀어졌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 탓에 거처도 자주 바뀌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4년 전 현재 살고 있는 회기동의 2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김 어르신은 당장 먹고살 걱정에 매일 밤잠을 설쳤다. 기초연금으로 월세를 내고 나면 수중엔 만원짜리 몇 장만이 남았다. 간간히 불당의 탱화를 그리며 돈을 벌기도 했으나 지병인 척추협착증이 심해져 그마저도 못할 지경이었다. 나중엔 공동 취사가스조차 장기 체납으로 끊겼고, 월세도 밀려 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

▲ 김영진 어르신이 지난해 9월 열린 바자회에서 그린 풍속도.

김 어르신은 “힘든 생활고에 몸마저 아프니 정말 세상 살기 싫었다”며 “가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까도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던 지난해 3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가 희망의 손길을 뻗었다. 복지위원 2명이 김 어르신과 같은 고시원에 사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어르신 댁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집 주인으로부터 딱한 사정을 듣고 긴급 후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
희망복지위원회는 동 주민센터와 손잡고 대대적인 재활 지원에 들어갔다.
우선 주민센터는 ‘따뜻한 겨울보내기’ 후원금으로 생계비 40만원을 지원했고, 서울형기초보장수급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신청을 도와 매달 20만원씩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양 기관이 손잡고 매달 ‘반찬가게 부식’, 매주 ‘사랑의 줄 잇기 식사’를 통해 식량지원에도 나섰다. 여름엔 계절용 이불과 선풍기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김 어르신의 본업이 만화가였음을 알게 됐고, 지난해 9월 열린 바자회에서 캐리커처 판매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이 행사가 예상보다 좋은 호응 속에 끝나자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는 전문 유화물감과 100만원 상당의 노트북을 지원하며 김 어르신이 만화가로서 재기하도록 도왔다.
지난해 11월 열린 ‘희망복지 우수사례 발표회’에선 김 어르신을 모델로 한 연극 ‘어느 만화가 노인의 꿈’이 공연되기도 했다. 그는 공연에 사용된 8자 병풍 규모의 세트 배경 그림을 직접 그렸다. 거기에 자신의 현재까지의 삶을 담았다. 그러면서 만화가로서의 삶을 다시 한 번 살아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그의 진심이 하늘에 통했는지 이후 그림실력이 입소문을 타 여러 곳에서 섭외 문의가 잇따랐다.
서울시 시민청 내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복지위원의 요청으로 올해 1월부터 매달 하루 캐리커처 그려주기 행사를 갖고 있으며, 4월부턴 희망복지위원회 특화사업인 ‘화조(꽃과 새) 따라 그리기 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수입이 생긴 김 어르신은 이제 직접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생활력을 갖추게 됐다. 한때 자살까지도 생각했던 그가 이젠 가슴에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일 인터뷰 차 방문한 그의 방 책상 위엔 작업 중인 만화 원고가 가득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그를 위로해 준 교회에 선물할 것이란다. 채색 작업에 열중인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하다.
“삶의 희망과 용기를 되찾아준 희망복지위원회와 주민센터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오래전 중단했던 단행본 출간에 대한 욕심도 되살아났어요. 힘들겠지만 꼭 도전해보렵니다. 제 만화가 인생의 제2막은 이제 시작 됐으니까요.”
이상연 기자 lees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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