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다 죽는 거 아닌가 걱정… 죽음과 경주하다보니 집중이 잘 됐어요”
“글 쓰다 죽는 거 아닌가 걱정… 죽음과 경주하다보니 집중이 잘 됐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7.10 11:07
  • 호수 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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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 장편소설 완성한 소설가 복거일

4년여전 간암 진단… 글쓰기 위해 항암치료 포기, 1년 만에 소설 3권 탈고
노인의 4苦, 자서전 쓰면 해결돼… 자식에게는 부모를 기리는 소중한 자료

세계 문학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매달려 장편소설을 완성한 작가 얘기다. 소설가 복거일(69)씨. 복씨는 최근 ‘역사 속의 나그네’(문학과지성사·전 6권)를 펴냈다. 1991년 1~3권을 출간해 일단락 지은 후 1년 만에 4~6권을 썼다. 지난 7월 초, 서울 충무로 종근당 건물에서 강연을 마치고나오는 복씨를 만나 흔치 않은 삶을 사는 이유와 신작 뒷이야기 등을 들었다.

-몸은 괜찮은가.
“암이란 것이 진행속도가 느려 살살 달래며 지내요. 암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둬도 사람은 잘 안 죽어요. 손대면 더 안 좋아지죠. 저는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해요. 몸을 구부리면 간 부위에 압박이 느껴지고 좀 피곤하지만 이 나이에 좋아지진 않을 겁니다.”

-식이요법은.
“아무거나 잘 먹어요. 채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고기를 잘 안 먹었는데 요즘은 고기가 당겨요.”

-평소 술·담배도 안한다고 들었는데.
“가족력인 거 같아요. 아버지도 간암이었거든요.”

복거일씨는 2011년 초, 몸살감기가 끊어지질 않고 어깨가 움직이지 않아 건강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뇌는 이상이 없고 폐와 간이 이상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암세포가 이미 폐에서 간으로 전이가 된 것 같다”며 MRI 사진을 보여주었다. 폐에 반점이 보이고 간에 종양이 붙어 있었다. 그날 집으로 오면서 복씨는 아내에게 “다신 병원에 안 온다. 한번 입원하면 글쓰기 어렵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작가들도 치료 받다가 쇠약해져서 글 다 못쓰고 갔다”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지만 복씨는 “급한 일이 있어 못 간다”고 끊었다.
-왜 항암치료를 거부하나.
“제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그래요. 암 치료를 받으면 몸이 상할 수밖에 없어요. 작가는 기력이 없어지면 더 이상 글 못써요.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치료와 일을)병행할 수 있겠지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휴직계를 내고 말이에요. 하지만 장편소설을 쓰는 일을 치료를 받으면서 한다고? 소설 쓰는 거 보통 일이 아니에요. 양자택일해야 해요. 더구나 내 나이 지금 70을 바라보는데….”

-70이면 창창한 나이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 70이 상한선이에요.”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한 달포 고생했지요. 진단 받고 온 날 정신이 없잖아요. 매일 잠들기 전에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탐정소설을 읽었어요. 그날도 읽고 누웠는데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는 거예요. 너무 답답해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마루를 서성대며 생각했지요. 암 진단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심리적 쇼크로 말이에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기로 했지요. 육체가 충격을 받았는데 정신에도 부조화가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느 날인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데 앞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갑자기 부모님 산소 생각도 나고 저도 몰래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겁니다. 그날 자리에 누워 동시 비슷한 걸 하나 썼어요. 이후 가슴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더군요.”

-어떻게 1년 만에 3권을 쓸 수 있나.
“암 판정 받는 순간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어요. 쓰다가 죽을까봐 걱정이었어요. 죽음과 경주한다고 생각하니 집중이 잘 됐어요.”

-3권을 합하면 무려 1300여쪽이다. 하루에 30여쪽 씩 쓴 셈이다.
“그런 거 따져보지 않았어요. 많이 쓰는 날도 있고 적게 쓰는 날도 있고….”

‘역사속의 나그네’는 21세기 지식인 ‘이언오’가 ‘가마우지’라는 이름의 시간여행체를 타고 과거를 여행하다 16세기 조선에 좌초한다. 눈부신 현대 과학지식을 활용해 세력을 모은 후 사회 변혁을 도모하는 내용이다. 미래소설이면서도 기존 역사를 대체한 역사소설로, 역사 환상을 통해 작가가 지향하는 지식인의 합리주의를 투사하고 오늘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 사상을 에둘러 표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인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나.
“6권짜리를 다 읽기는 힘들 겁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니 과거에 대해 반추하고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은 살아본 경험이 많지요. 옛날 인연은 낡아지고 새 인연이 중요해지는데 그에 대한 대처가 중요합니다. 단짝이고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나이 들면 멀어지고 만나기 힘들어지고 그러지요. 부부도 마찬가지에요. 같이 해로하기는 힘든 법, 한 사람이 먼저 떠났을 때 여러 가지 선택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 이 작품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노인은 4苦(빈곤·질병·고독·무위)로 힘들다. 해결 방법이라면.
“지적인 활동을 오래하는 것이 중요해요. 누구나 나름대로 소중한 삶을 가지고 있어요. 실패했든 명예와 부를 얻었든 그런 걸 한권쯤 기록해두고 스스로 회상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손들에게 보여주는 게 뜻이 있다고 봐요.”

-자서전이 4苦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문학적 가치를 떠나 개인의 기록은 저마다 가치가 있어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도 조선시대 보통사람들의 기록이 없어서 애를 먹었어요. 제왕이나 중앙관서들, 귀족들의 자료는 있지만 서민들이 어떤 괴로움을 겪고 어떤 희망을 안고 살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힘들었어요. 미국의 유명한 문필가의 아버지는 무학에 가까웠어요. 그 아버지가 아들이 작가로서 성공한 걸 옆에서 보고 자기도 기록을 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남긴 것이 종이 한 장 분량의 글이었어요. 그의 사후에 그것은 작가 아들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 됐지요. 요즘은 자서전 쓰는데 비용도 많이 안 들잖아요. 컴퓨터로 하면 되니까. 자식들이 애 키우랴 자기 앞가림 하랴 정신없이 보내다가 나중에 부모를 회상할 날이 올 텐데 그런 때를 위해 남기는 게 좋다고 봅니다.”

충남 아산 출생의 복거일 씨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은행·기업·연구소 등에서 일하다 1987년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은행을 그만둔 이유는 책 읽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서였다. 논문·에세이·과학소설·희곡·전기 등 장르 불문하고 글을 써와 총 50여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
한때 영어 공용화 제안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고,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보수층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자신은 생태계의 모든 존재와 공존하는 ‘자유주의자’라고 밝힌다. 한때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정치까지 하면 재능의 분산이 너무 심할 것 같아 작가로 남기로 했다.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를 어떻게 보나.
“개인이나 사회나 근검절약을 해야 합니다. 잘 나간다고 흥청망청 대책 없이 쓰다보면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는 상식을 확인시켜주었어요.”

-우리 사회가 빈부·세대·이념 간 갈등이 심하다.
“사회적 갈등은 역사가 오래될수록 심해집니다. 6·25 전쟁으로 빈털터리가 된 후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성장할 시기에는 갈등이 오히려 적었어요. 누구나 가난했고 빈부 격차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때는 박정희 대통령 같은 지도력이 통했어요. 사회가 원숙해지면 갈등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건 전 세계가 다 겪는 현상이에요. 해법은 경제성장입니다. 누구나 잘 살게 되면 갈등이 사라져요.”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도덕의 추락입니다. 사회는 법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성돼야 하는데 나라 곳곳에서 믿음이 사라졌어요. 도덕이 낮아지면 거래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것저것 사서 카드빚 지고는 갚을 노력을 하지 않고 탕감부터 요구하니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겁니다. 서로 못 믿으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요. 대통령도 자기가 믿을 사람만 찾다보니 인사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도덕 추락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방법이라면.
“지도자들이 도덕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간단한 일부터 시행하는 국민운동도 필요해요. 예를 들어 우측통행을 하기로 했으면 우측으로 다녀야 해요. 그것이 행인으로서의 권리이자 일종의 재산권입니다.”

-좌우명은.
“그런 거 별로 생각 안하지만 제가 우리 딸에게 주는 가훈 같은 것이 ‘서두르지 말자’입니다. 서두르면 마무리가 부족해져요. 느긋하게 열심히 살자는 거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시집을 내려고 해요. 몇 편 써둔 걸 잘 다듬어서 묶으려고 합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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