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때 순국한 열사 기리려 세운 곳
을미사변 때 순국한 열사 기리려 세운 곳
  • 조상제 지하철 여행가
  • 승인 2015.07.10 11:10
  • 호수 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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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할철견문록]<36> 장충단공원
▲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진 곳이었지만 현재는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 울고만 있을까 /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장충단공원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에도 등장할 정도로 서울 시민에게 이제는 익숙한 공원이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이 공원은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과 열사들을 제사지내기 위해 1900년 대한제국 고종이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한 데서 비롯됐다. 고종은 어영청의 분소로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남소영 자리에 장충단을 짓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제사는 중단됐고 일본은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사라졌으며, 1920년대 들어서면서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해 벚꽃 수천 그루를 심은 후 연못·놀이터·산책로 등을 만들었다. 그 뒤 일본인들이 상하이 사변 때 사망한 일본군 육탄3용사의 동상을 세웠고,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절인 박문사도 인근에 지었다. 하지만 광복 후 일본 군인들의 동상과 박문사는 즉각 철거돼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제의 흔적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정부 수립 후 공원에는 여러 가지 시설이 들어섰다.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철거하게 된 수표교(세종 때 청계천에 가설한 돌다리)가 이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는 세종대왕기념관으로 다시 옮겨졌다. 1960년대 들어서는 이준 열사와 사명대사 등의 동상이 건립됐고, 자유센터와 타워호텔·중앙공무원교육원)·재향군인회 등이 들어섰다.
2010년에는 장충단 자락에 남산 소나무와 산딸나무, 이팝나무 등으로 조성된 숲속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지하철역사의 지하수를 이용한 벽천폭포와 생태연못, 실개천 등이 새로 조성됨으로써 이 공원은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공원 내부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장충단비가 있으며, 비문에는 장충단공원을 세우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비의 높이는 183㎝이고, 너비는 68㎝에 두께는 35㎝이다. 아울러 이곳 일대에는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김용환 선생 동상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각종 유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가는 길: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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