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싹 식혀주는 환상적인 물속 세계
무더위를 싹 식혀주는 환상적인 물속 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7.10 11:34
  • 호수 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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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나 할러웨이’ 전
▲ 제나 할러웨이는 세계 최초의 여성 수중사진작가로 스킨스쿠버 기술을 활용한 고난도 사진 작품으로 유명하다.

인공 빛과 광각렌즈 등 장비 이용 물속서 사진 찍어… 200여점 소개
순백 천사 모습 표현한 ‘스완송’, 동화 바탕으로 한 ‘물의 아이들’ 눈길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금발 미녀가 기다란 붉은 천을 휘감고 칠흑 같은 어둠속을 유영한다. 그녀의 몸짓은 거대한 화마(火魔)에 둘러쌓인 듯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다. 한 송이 붉은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손이라도 댈라치면 활활 타오를 것 같다. 이는 사진 속 피사체의 모습이다. 이 신비한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놀랍게도 물속이다. 지난 7월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영국 수중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Zena Holloway)가 선사하는 환상적인 물속 세계에 관람객들은 잠시 더위를 잊고 있었다.
‘더 판타지’(The Fantasy)란 이름으로 9월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제나 할러웨이의 초창기 미니 작품(손바닥 크기 사진)부터 동화를 바탕으로 한 최근 연작까지 200여점이 소개된다.
1973년 바레인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자란 제나는 18세에 이집트에서 열린 스쿠버다이빙 과정에 참가했다가 낯선 물 속 세상에 매료돼 수중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쿠버 안내자로 활동하며 수중촬영 기법을 독학으로 익혀 나간 그는 1995년 런던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수중사진을 찍으며 세계 최초의 여성 수중사진작가가 됐다.

▲ ‘물의 아이들’ 연작 중 ‘미팅’(Meeting, 2007).

수중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사물을 왜곡하는 물의 굴절률을 보완해주는 광각렌즈와 스트로보(Strobo)라고 하는 인공 빛과 같은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제나는 이 특수장비를 활용하고 여기에 공간 연출과 기획력, 모델과의 물속 소통 능력, 고도의 촬영기법 등을 더해 고난도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나는 현재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예술,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사진을 바탕으로 나이키, 소니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했고 지큐,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전 세계적인 잡지의 표지 사진을 장식할 정도로 예술적,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전시장에서 맨 먼저 관객을 맞는 건 그리스신화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서 영감 받은 연작들이다. ‘비 인스파이어드’ 패션지에 실린 최근작으로 그리스로마 신화 속 여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델이 물거품 속에서 다채로운 몸짓으로 여성미를 발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 등장하는 것이 제나의 대표작 ‘스완송(백조의 노래)’ 연작이다. 이 작품은 춤추듯 서서히 회전하는 날개달린 순백의 여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천사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평생 울지 않다가 죽음이 임박해서 단 한 번 아름답고 구슬프게 노래한다는 백조의 노래처럼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지난해 세계 최고의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컬렉션에 선정되면서 예술성도 인정받았다.
전시장 한쪽에는 고단한 작업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통해 제나가 수중사진을 어떻게 촬영하는지를 알려준다. 명품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깊이 6m 대형 수조에 풍덩 뛰어들면 스트로보를 장착한 수중카메라 든 제나의 촬영이 시작된다. 머리칼과 옷자락 너풀거리며 하늘을 날며 발레하는 듯한 모델의 율동 하나하나를 그는 집요하게 포착한다. 7~8시간에 걸친 촬영이 끝나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옷은 일회용처럼 버려지고 사진만 남는다. 모델이 물에 들어가기 전 머리, 얼굴, 옷 등을 꾸미는 준비만 해도 6시간 이상 걸린다.
제나의 이러한 노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그의 대표작 ‘물의 아이들’(워터 베이비) 연작이다. 이 연작은 1863년 영국 작가 찰스 킹즐리의 동명의 소설을 주제로 촬영한 것이다. 작품은 굴뚝 청소부 소년 톰이 일을 하다 실수를 해 사람들에게 쫓겨 강에 빠져 물속에서 살아가다 온갖 실패와 고난을 겪고 나서 그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나는 영국 내 수영교실을 수소문해 수영이 가능한 아이들을 발굴해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 속 아이들이 헤엄을 치면서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가 가장 애착을 지닌 작품으로 아이들과 강아지 등이 꿈속처럼 물속을 함께 떠다니고 독특한 일러스트가 삽입된 배경 등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6장으로 구성된 연작은 신비로운 ‘물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함축하고 있어 마치 짧은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제나가 인체의 관능미를 보여주기 위해 촬영한 수중 누드사진을 전시한 ‘누디룸’과 그가 사용하는 수중 촬영도구 등을 모아놓은 방도 전시를 다채롭게 한다. 관람료 1만원.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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