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고 줄이는 은행들, 어르신 고객 불편해소는 뒷전
합치고 줄이는 은행들, 어르신 고객 불편해소는 뒷전
  • 정찬필 기자
  • 승인 2015.07.31 11:22
  • 호수 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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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통장 120년 만에 사라져… 9월부터 단계적 감축

반찬거리를 사기위해 시장으로 향하던 김연숙(72)어르신은 시원한 은행에서 땀도 식히고 은행 업무도 볼 겸 인근 아파트 상가에 들렀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까지 은행이 위치했던 곳은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통합이전 안내’라는 현수막만이 과거 이곳에 은행 지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어르신은 “수십 년간 거래하던 은행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 금융 환경의 변화로 어르신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고령자 특화 서비스’나 ‘스마트 금융’ 교육 확대 등 은행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고나면 지점 통폐합… 현금인출기 감소로 불편 가중
인터넷·모바일 뱅킹 늘리려면 ‘스마트 금융’교육 확대해야

비용절감을 위한 은행들의 ‘합치고 줄이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장기간 계속된 저성장·저금리로 인해 은행의 수익이 감소하면서 지점 통폐합과 ATM(현금자동입출금기) 감축에 나섰다. 2017년 9월부터는 60세 이상이 아닐 경우 종이 통장 발급이 제한된다. 은행들은 보완책으로 인터넷·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지만 금융서비스에 적응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큰 문제다.
과거에는 모든 은행이 지점 확대에 힘썼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지점은 광고 효과가 커서 고객 유치도 쉬웠고 인근 건물이나 땅값에도 영향을 줬다. 고객이 많이 방문할수록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대형 지점의 경우 수십 명의 은행원이 일했고 지점장의 권한과 위세도 막강했다.
그러나 수익이 감소하면서 한껏 늘어난 지점들은 ‘애물단지’가 됐다. 은행들은 과거 효자였던 지점들이 적자로 돌아서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갈수록 창구거래가 줄어드는 점도 지점 통폐합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으로 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 건수 중 11.6%, 조회서비스 중 13.9%만이 창구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신 인터넷·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늘었다.
지점 통폐합의 이유는 분명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김연숙 어르신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만 잘 다루지 못해 모바일 뱅킹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멀더라도 지점을 방문하는 게 편하다. 은행은 신뢰성이 생명인데 직원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거래가 이뤄지는 방식이 낯설다”고 말했다.
ATM도 비용절감을 이유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ATM 수는 2011년 5만6102대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전환, 지난해에는 5만3562대로 줄었다. 3년 사이에 2500여대가 사라진 셈이다.
은행들이 ATM 감축에 나서는 이유도 운영할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계구입비, CCTV 등 관련 장비 설치비, 관리 용역비, 유지보수비 등 전체 관리비용이 수수료 수입보다 많이 들어 통상 한 대를 운영하는데 연간 16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자동화 기기가 비용증가로 인해 구조조정 대상이 된 셈이다.
1897년 이래 120년 가까이 발급 되어온 종이 통장도 사라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통장거래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오는 9월부터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은 고객에게 금리 우대와 수수료 경감, 경품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후 2017년 9월부터는 60세 이상이거나 고객이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종이통장 발급이 금지된다. 종이 통장을 없애려는 이유는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고 판단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과거보다 통장 발급과 관리비용은 늘어났는데도 이를 이용한 금융거래는 점차 줄고 있다. 인건비를 포함해 개당 5,000원에서 1만8000원에 이르는 통장 발행 비용도 원인이 됐다.
지점 통폐합, ATM감소, 종이 통장 발급 축소는 생존을 위한 은행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서비스 공백은 인터넷·스마트폰 뱅킹으로 대체되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은행 업무 처리는 비용절감과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아직은 이용자가 젊은 층에 몰려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인터넷·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인터넷·모바일 뱅킹 등록 고객 수는 2013년보다 29.6% 증가한 4820만명에 달한다. 이중 50대의 비중은 2013년 10.0%에서 2014년 11.7%로 60대 이상은 2013년 3.5%에서 2014년 4.6%로 나타났다.
이용자가 늘고 저변은 확대중이지만 갈 길은 멀다.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컴퓨터로 접속할 때마다 공인인증서를 인증해야하고 전용 앱을 다운받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현재의 방식에 적응하기 어렵다.
한국금융연구원 장동구 연구위원은 “수익성에 따른 은행 통폐합은 충성도 높은 고객의 이탈을 부르는 등 부작용이 많다”며 “어르신들의 불편을 고려해 ‘고령자 특화 서비스’ 개발에 힘쓰고 ‘스마트 금융 교육’을 확대하는 등 은행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찬필 기자 jcp@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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