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이기주의적 행동, 자원봉사
착한 이기주의적 행동, 자원봉사
  • 한혜경
  • 승인 2015.07.31 13:09
  • 호수 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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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통역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는 A씨를 만났다. 20일 간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일정을 소화했다는 A씨의 나이는 65세다. 그는 ‘힘들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걸 실감했죠. 하지만 그 외엔 모든 게 다 좋았어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한 10년은 젊어진 기분이에요. 전에는 돈 되는 일만 찾았는데, 앞으로는 봉사도 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했습니다.”
만약에 누가 우리나라 은퇴자나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 혹은 추천할 만한 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남을 돕는 일, 즉 ‘자원봉사활동’이라고 대답하겠다.
특히 건강하고 시간도 있으며,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고 사회로부터 받은 것 또한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원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은퇴나 노화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변화나 위기에도 잘 대처하고 적응한다.
사실, 자원봉사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소도시 슬라우(Slough)에서 실시한 실험에 의하면, 자원봉사를 하면 월급이 두 배로 늘어난 것만큼 행복하며, 수명도 더 길어진다고 한다. 마더 테레사의 생전 봉사활동 모습을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면역력이 향상된다는 ‘테레사 효과’란 단어도 생겼을 정도이다. 우선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남을 돕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자원봉사를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이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로는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행복감이 넘쳐서’ 혹은 ‘시간이 많고 힘이 남아돌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또 많이 배우고 가진 것 많은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 또한 바쁘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힘이 달린다는 점을 자주 호소했으며, 때로는 갈등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얼핏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 어떤 ‘의미’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사회적으로는 대단한 위치에 있지 않지만, 도덕적으로는 우월하다’, ‘나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일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생산적인 사람이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즉, 이들은 남을 돕는 행위를 통해 자기 유용성을 확인하고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유지하며 자아 성장의 기회를 가진다. 보다 의미 있는 환경과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원봉사의 동기에는 다분히 ‘이기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도 사실이다. 즉, 우리가 흔히 ‘이타주의적’이기만 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쉬운 자원봉사활동의 이면에도 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아 연속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주의도 이기주의 나름이다. 이런 식의 이기적인 선택은 당장 눈앞의 것에만 연연하는, 단기적이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훨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세련된 선택이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는 ‘이타주의’와 연결된다. 이는 나도 행복하지만 남도 행복하게 하는 ‘착한 이기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와 비교했을 때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교육수준도 높고 시민의식도 높은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지 않겠는가. 이들이 착한 이기주의적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는 그런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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